대통령과 부통령, 하원의장 등 초강대국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공항으로 총출동할 정도로 극진한 환영 속에 방미 일정을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후변화와 빈곤 문제 등에서 미국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3일 백악관 환영행사를 시작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오전 9시22분께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자, 3시간 전부터 백악관 남쪽 잔디 광장과 인근 공원에 모여 기다리던 1만5,000여 군중이 환호를 보냈다.
환영식에서 교황은 “인류 문명의 중대 시기에 미국을 방문하게 돼 기쁘다”고 밝힌 뒤 포용적 사회공동체의 중요성과 기후변화 문제 대한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의 노력에 치하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앞선 환영사에서 “교황의 방미로 난민ㆍ이민자 문제, 빈부격차,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환영 행사 후 백악관 집무실로 옮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교황은 45분간 단독 면담을 가졌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날 면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변화와 전세계적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한 뒤,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 발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이날 회동에서 교황은 빈곤과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도 전날 백악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교황과 오바마 대통령 회동에서 기후변화, 쿠바와의 화해, 빈곤 문제 등이 주요 의제라고 보도했다. 교황의 방미 중 메시지와 관련, 공화당 등 보수진영에서는 낙태와 생명중시가 강조되기를 원하는 반면 민주당 진영에서는 이민개혁과 기후변화 등에 비중이 두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환영행사와 거리 행진을 마친 뒤 교황은 오후 4시15분 무렵부터 성 바실리카 대성당에서 시성식을 겸한 미사를 집전했다.
이에 앞서 전날 생애 첫 미국 땅을 밟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유의 친 서민적 행보를 이어갔다.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의 극진한 영접을 받은 뒤 배기량 1,500㏄ 소형 피아트 500L을 이용해 숙소인 교황청 대사관저로 이동했다. 지난해 8월 방한 당시 기아차 ‘쏘울’, 올해 1월 필리핀에서는 ‘지프니’를 이용하는 등 교황은 외국 순방 때마다 해당국 서민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교황은 24일에도 미국 상ㆍ하원 합동연설을 마친 뒤 워싱턴 성패트릭 성당에서 수백 명 노숙자와 극빈자, 이민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주의자’, ‘대중주의자’(포퓰리스트)라는 미국 보수진영의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자신의 성향에 대해 “교회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교황이 사회주의자다, 심지어 가톨릭교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 교회의 사회적 교리에 있는 것 이상으로 말한 적이 결코 없다”고 답변했다. 또 “내가 하는 말이 약간 좌경적으로 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통역의 실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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