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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학생 43명 실종 1년… 정부 발표 뒤집은 IACHR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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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학생 43명 실종 1년… 정부 발표 뒤집은 IACHR 보고서

입력
2015.09.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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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정부의 주장, 시장 부인 행사장 연설 방해 우려

미주인권위원회 의혹 제기, 소규모 지역 갱단이 준비하긴 불가능

니에토 대통령에 대한 불만 최고조… 70년 장기집권 여당 무능에 분통

실종된 멕시코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농촌사범학교 학생의 어머니가 올 5월 26일 멕시코시티서 열린 대규모 진상규명 집회에서 ‘그들이 데려간 아이들은 살아 있다’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실종된 멕시코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농촌사범학교 학생의 어머니가 올 5월 26일 멕시코시티서 열린 대규모 진상규명 집회에서 ‘그들이 데려간 아이들은 살아 있다’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멕시코 남서부 게레로주의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농촌사범학교 소속 학생 43명이 한꺼번에 납치돼 실종, 살해된 사건이 오는 26일로 발생 1주년을 맞는다. 지난 1년간 멕시코 정국을 거세게 흔든 이 사건은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휴먼라이츠워치), ‘멕시코 이면에 존재하는 범행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프란치스코 교황)으로 평가 받으며 멕시코의 민 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전 세계가 사건에 주목하자 멕시코 치안당국은 “지역 경찰과 연관된 지역 갱단에 의한 것”이라며 논리적인 정황도, 물리적 증거도 없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태를 서둘러 덮었다. 하지만 지난 6일 멕시코 당국의 수사결과를 완전히 뒤집는 미주인권위원회(IACHR)의 500쪽짜리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사태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IACHR은 “6개월 간의 자체조사 결과 당국 발표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며 “전면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IACHR “당국 수사, 허점투성이”

IACHR이 꼽는 수사당국 발표의 가장 큰 의문점은 “실종된 학생들은 경찰에 의해 갱단에 넘겨진 뒤 살해됐으며, 시신은 모두 불태워졌고 유해는 강물에 버려졌다”는 범행 수법에 있다. 수사당국은 ‘전사들’이라는 지역 갱단이 “경찰로부터 해당 학생들은 우리를 공격하려는 다른 갱단의 조직원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가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며 이 같은 결론을 냈다. 또 갱단이 시신의 뼈 등에서 유전자 검출이 되지 않게 하려고 타이어와 장작을 올려놓고 기름을 뿌린 뒤 십여시간 동안 불태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IACHR이 전문가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43구나 되는 시신을 완전히 소각하려면 나무장작 30톤과 타이어 및 디젤유 각 13톤이 필요하며, 소규모 지역 갱단이 이 같은 연료를 준비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당국의 발표대로 뼛조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소각이 실제 이뤄졌다면 커다란 흔적이 남아야 하지만, 아무 증거가 없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 경위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국은 사건 당일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 이괄라 시장이 부인 마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피네다와 행사에 참석하면서 부인의 연설에 방해가 될까 학생들의 진압을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IACHR 조사 결과 학생들은 피네다가 연설하고 난 뒤에야 이괄라시에 도착했다. 또 당국은 학생들이 버스 4대를 탈취해 달아났다고 밝혔으나 실제 탈취된 버스는 모두 5대였다. 특히 IACHR은 마지막 버스에 마약이 실려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학생들의 이동경로를 미리 파악해 철저히 감시했다는 당국 발표와 달리 그 과정에서 경찰 총격으로 학생과 시민 총 6명이 사망한 데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유전자가 확인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지만, 유해를 분석한 오스트리아 연구진마저도 “결과를 100% 확신하지는 않는다”고 밝혀 의혹이 커지는 상황이다. 멕시코 정부는 유전자 검사의 토대가 된 유해를 강에서 건진 자루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나, 연구진은 출처가 당국 발표대로인지는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치안, 정부 무능 겹쳐 사태 악화일로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이면에는 멕시코의 취약한 치안이 있었다. 수사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아바르카 전 시장은 사건 당일 부인의 저녁 파티연설이 방해 받을까 경찰에 학생 시위 진압을 지시했고, 지시를 받은 경찰이 이를 다시 지역 갱단에 맡겼다. 결국 경찰과 범죄 조직의 유착이 광범위하게 고착돼 있음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시장 부인 피네다가 과거부터 범죄조직과 연관돼 있었다는 것. 검찰 조사 결과 피네다의 오빠들은 이괄라 지역의 갱단 조직원임이 밝혀졌고, 본인 역시 마약 카르텔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멕시코의 치안현실을 비판하며 실종 학생들을 직접 찾아 나섰던 운동가 미구엘 앙헬 히메네스가 지난달 8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의혹은 다시 증폭했다. 그는 자신이 모는 택시 안에서 총알 두발을 맞고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경찰은 아직 범인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히메네스는 줄곧 해당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숨긴다는 이유로 지역 관리들을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범죄 조직에 납치된 피해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멕시코 주민들의 자발적 구성체를 만들어 실종자 수색을 주도, 총 300여명의 실종자를 찾아내기도 했다. 특히 실종 대학생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됐을 때에는 당국의 조사에 직접 참여했다. 그는 주검으로 발견되기 불과 일주일 전 CNN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시신 100구가 숨겨진 무덤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멕시코의 열악한 치안 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나쁜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들을 맞닥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안이 갈수록 악화하는데도 정부는 허술한 수사와 대응을 반복하며 무능을 드러내고 있다. 멕시코 혁명 이후부터 70년 이상 장기집권해 온 제도혁명당과 그를 이끄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대학생 학살 사건을 명쾌히 해결하지 못하자, 국민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수사를 지휘하던 헤수스 무리요 카람 당시 검찰총장은 지난해 11월 “충분히 했다, 지쳤다”고 발언했다가 거센 뭇매를 맞고 올 2월 경질됐다. 그의 발언이 나온 직후 트위터에서는 ‘#충분히 했다, 지쳤다’는 해시태그를 달아 카람 검찰총장을 비판하는 물결이 퍼졌다. 수천명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조직 범죄를 그냥 보고만 있는 정부에 나 역시 지쳤다”며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올 3월에는 전직 대통령 비센테 폭스 케사다란이 유족들을 향해 “자녀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좋지만, 현실을 받아들여라”라고 비난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이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멕시코 민심은 정권으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올 4월 멕시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제도혁명당을 이끄는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은 44%로 지난해 51%에 비해 6%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치안 정책에 대한 호감도는 지난해 53%에서 올해 35%로 수직으로 하락했고, 니에토 대통령의 부패 척결 의지에 대한 호감도 역시 지난해 43%에서 올해는 27%로 15%포인트나 줄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 존 아커만 교수는 CNN에 “멕시코가 민주주의를 맞이한 과정은 사실상 그리 민주적이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유족을 포함한 멕시코 국민 전체가 정부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족 “살아 돌아오길” 애타는 행보

유족과 지인들은 피폐한 마음을 겨우 추스리며 실종된 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19살 아들을 잃은 클레멘테 로드리게즈 모레노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왜 아이들이 우리 품에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며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를 도와 줄 누군가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실종된 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녔던 네리 델 라 크루즈도 “가끔 나는 비명소리를 듣는데, 내 친구들의 목소리인 듯하다”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CNN에 털어놨다.

유족들은 멕시코 전역 학생들과 함께 시위와 집회, 동맹휴학 등을 조직해 실종 학생 귀환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그들이 데려간 아이들은 살아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길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멕시코 전역, 나아가 미국에서까지 항의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특히 올 2월에는 멕시코 외교부 관리와 함께 유엔위원회 회의에 비공개 참석, 멕시코 정부가 사건의 조사를 제대로 지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IACHR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 아렐리 고메스 멕시코 검찰총장은 “유전자 전문가를 동원해 사건 재조사를 지시할 것”이라며 밝혔지만, 그 동안 불거진 의혹들을 모두 해소할 정도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질 지를 두고 많은 이들이 우려를 놓지 못하고 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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