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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사 교과서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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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사 교과서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입력
2015.09.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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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교육과정의 중ㆍ고교 한국사 과목에서 임시정부의 정통성 부분이 제외되고 일본강점기 독립운동 기술이 축소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가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역사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다. 역사학자들은 새 교육과정에 뉴라이트 학자들의 인식이 반영됐다고 보고 있다. 역사학계 주류가 아닌 일부의 견해가 교육과정에 담기면 미래세대의 역사인식과 국가관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새 교육과정 집필기준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건국절’주장을 수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건국절 주장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현행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조차 정부 수립 당시 공식 연호를 ‘대한민국 건국 30년’이라고 표명한 바 있다. 의문스러운 것은 지난달 18일 새 교육과정 행정예고 때까지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었으나 최종 개편안에서 뒤바뀐 경위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대한민국 정통성의 핵심기준이 바뀐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 내용의 퇴행도 문제다. 1920년대 독립운동만 구체적으로 적시할 뿐 193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은 거의 기술하지 않고 있다. 조선후기 근대화에서 자생적 측면을 강조한 ‘내재적 발전론’내용이 전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하고,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반영했다는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그릇된 역사인식을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수용하려 하는 자체가 문제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을 비롯해 한국사 교과서를 지나친 보수 편향으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비중을 현행 50%에서 40%로 축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념적 논쟁을 회피하려,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교수와 교사, 학계 전문가들의 반대 성명이 잇따르는데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집착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도 역사를 정치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단견 때문이다. 어떤 정권이든 의도를 갖고 역사를 흔들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역사가 특정 정치적 의도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정부는 좀 더 긴 안목을 갖고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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