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 ‘씽크탱크’ 격인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행정부(정부)가 잇달아 발표한 소비촉진 방안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다. 입법조사처는 ▦개별소비세 인하 ▦대규모 세일 활성화 ▦가을휴가 장려 ▦해외 직접구매(직구) 활성화 등이 골자인 정부 대책이 지나치게 단기적인 조치로 소비 위축에 대한 근본 처방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23일 ‘정부 소비촉진 방안의 쟁점 및 보완대책’ 보고서에서 정부가 소비 부진의 원인 진단 자체를 잘못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입법조사처는 “정부는 소비심리 위축 원인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꼽고 있으나 최근 민간소비 부진은 미래를 대비해 가계가 저축을 늘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등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메르스 등 단기 요인보다는 좀 더 구조적 요인 때문에 소비 침체가 장기화된다는 지적이다.
입법조사처는 정부가 내놓은 승용차 및 일부 사치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와 관련 “소비 진작 및 내수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승용차 개소세 인하로 연말까지 자동차 판매량이 일시 상승할 수 있지만, 승용차가 사용 기간이 긴 내구성 소비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소세 인하가 끝나는 내년 초 판매량이 급감하는 ‘절벽 현상’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 수요를 앞당기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일부 사치품 개소세 부과 기준을 상향(200만원→500만원)해 부자들의 지갑을 열고자 한 대책에 대해서도, 입법조사처는 “사치품에 개소세를 부과하는 것은 단일 세율의 역진성(저소득자가 세금 부담을 더 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며 “과세를 축소하면 역진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소비 촉진을 위해 민간 부문 참여를 대거 독려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입법조사처는 “카드사 할인, 프로모션(세일) 실시, 병행수입품 할인, 배송료 할인 등의 대책이 정책 수단의 선택 측면에서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된다”며 “민간 부문 자율성을 간섭하거나 개입하는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마지막으로 입법조사처는 일회성 소비 진작책이 아니라 가계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근본 대책을 주문했다. ▦가계소득 증가 대책 ▦주거비 상승 지원책 ▦노후 불안에 따른 공적연금 정비 ▦의료지원시스템 확충 등을 통해 소비심리 위축을 해소할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비가 일시적으로 진작되면 불씨가 살아나 소비가 촉진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개소세 인하의 경우도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인하 시점이 끝나도 그렇게 수요가 많이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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