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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문학 공동체가 선생을 찾는 법

입력
2015.09.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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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동체로는 이례적으로 영어 공개 강의를 열었다. 중학생 수준의 어휘력만 있으면 3개월 만에 영어가 편안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어서였다. 인문학 강의로는 좀처럼 차지 않는 방이 오랜 만에 가득 찼다. 반갑다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답답했다. 이 땅의 영어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하다는 뜻 아닌가.

강의를 한 이는 공학자였다. 스마트 폰 개발자로,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외국어 학습법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가 찾아낸 학습법은 간단했다. 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듯, 패턴화한 쉬운 문장을 듣기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문법도 직독직해가 가능하도록 매우 단순하게 재구성했다. 그에 따르면 그 방법은 자신이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폴리그랏(polyglot), 즉 여러 개의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단 시일 안에 외국어를 학습하는 방법이었다. 영어 인터뷰와 연설, 영화 등을 예시해 가며 진행한 그의 강의는 열정적이었다. 질문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초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강의가 끝난 뒤 내가 소감을 말했다.

“정말, 그 방식으로 하면 나처럼 읽기만 떠듬떠듬하는 사람들도 듣기나 말하기, 쓰기가 좀 편해질 것 같네요.” “편해질 것 같다가 아니라 편해집니다. 지금 시작하면 연말 즈음, 영어로 된 연설이나 영화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영어로 복기할 수 있게 됩니다. 시작하십시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지금까지 적잖은 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결과 안 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윽고 그가 떠나자 공동체에 남아있던 이들이 물었다. “저런 선생을 어떻게 찾았습니까?” “찾은 게 아닙니다. 공동체에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러 왔다가 가르치러 나선 분입니다.”

배우러 왔다가 가르치게 된 이는 그 뿐 아니다. 감옥에서 장기수로 복역하는 동안 갑골문을 연구, 아이든 어른이든 6~10번 정도의 강의만 듣고 공부하면 어렵잖게 상용한자를 모두 익히게 할 수 있다는 이도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러 온 사람이다. 출소한 뒤 고문으로 망가진 몸을 추스르며 전남 진도에서 갑골문 한자 서당을 했던 그는 공동체를 만나자 서당을 만들고 훈장 되기를 자청했다. 배우고 가져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기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머잖아 공동체에서 영문 요가수트라 강독 및 요가 수련을 지도할 선생도 내가 수소문한 사람이 아니다. 요가 수련과 요가수트라 공부에 필요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러 왔다가 즐겁게 발목을 잡혀준 사람이다. 공동체에서 철학과 고대 희랍어, 라틴어 강의를 듣는 한 대학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학과 철학, 문화예술을 융합한 강좌를 만들어 선생으로 나선다. 독일어 선생도 희랍어, 라틴어를 공부하러 온 번역가였고, 프랑스어 선생도 철학 강의를 들으러 공동체를 찾은 학자였다. 드로잉을 지도하는 작가도, 건축을 가르치는 이도 수강생으로 이곳을 찾았다.

4년 반 전, 문을 열 때나 지금이나 인문학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빼어난 학자, 잘 가르치는 선생을 모시는 일이다. 이 일이 쉬울 리 없다.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일은 돈벌이와 거리가 먼데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 세상인 탓이다. 게다가 일부 대학 교수들은 이런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걸 부끄러워한다. 제자인 연구자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을 막는 교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 되기를 자청하는 학자며 전문가들이 늘어난다. 대부분 일부러 찾아서는 만나기 어려운, 보석 같은 이들이다. 대신 내가 하는 일은 멍석을 깔아놓는 일, 비가 오면 우산을 받쳐주는 일 정도로 축소되어 간다. 멍석에서 춤판을 열고 춤을 추는 이들이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춤의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공동체가 여기저기에 더 많이 생겨나면 우리 사회도 제법 풍성해지지 않을까. 대학이야 제 노릇을 하건 말건 말이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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