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 감독 김지운
'어린왕자' 시나리오 영상 맡아 역동적인 무대연출까지 선보여
'놈놈놈' 음악감독 장영규
국립무용단 '완월'로 연출가 데뷔… 강강술래 동작 쪼개 독특한 시도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 ‘놈놈놈’)을 함께 만든 김지운 영화감독, 장영규 음악감독이 내달 9~11일 경쟁작으로 맞붙는다. 신작은 영화가 아니라 무용이다. ‘놈놈놈’을 비롯해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등을 만든 김지운 영화감독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창단 5주년 기념작 ‘어린왕자’의 구성 시나리오 영상을 맡았다. 김 감독 외에도 박찬욱(‘복수는 나의 것’), 최동훈(‘도둑들’ ‘암살’) 감독 등과 호흡을 맞춰온 장영규 음악감독은 국립무용단의 ‘완월’을 통해 아예 연출가로 데뷔한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하는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겨 70여분간 다채로운 춤을 펼친다. 발레의 고전 ‘호두까기 인형’처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현대무용 레퍼토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김지운 감독은 “원작 자체가 워낙 훌륭하기 때문에 굳이 많이 바꾸고 싶지 않다”며 “다만 사막에 불시착한 소설 속 장면처럼 우리들도 어른이라는 세계에 불시착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조금 그로테스트한 느낌을 가미한다”고 밝혔다. 실제 무용수와 영상 속 무용수가 함께 춤추는 첨단 기술이 활용되고, 플라잉 기법을 활용한 역동적인 무대 연출까지 선보인다.
김 감독을 섭외한 이유에 대해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은 “공연은 이미지 싸움인데 영상작업을 통해 관객들이 보고 즐기며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내러티브가 확실해 추상적인 무용에 구상(具象)적 요소를 갖출 수 있고, 무용인들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고 덧붙였다. 20년 지기인 두 사람은 2005년 ‘세븐+1’이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같은 기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완월’은 지난해 국립무용단이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 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 선보인 10분짜리 소품 ‘강강술래’에서 착안했다. 21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장영규 감독은 “떼로 손잡고 원형으로 도는 흔한 강강술래가 아니라 마치 세포가 분열하는 듯 다양한 몸짓과 새로운 동선을 보여준 환상적인 춤이었다”며 “음악을 바꿔 작업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고 극장에 제안했는데 연출까지 맡게 됐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안무 없는 무용’이라는 독특한 시도를 한다. 기하학적인 구조를 반복ㆍ확장하는 프렉탈처럼 전통 강강술래의 동작을 잘게 쪼갠 뒤 무용수 18명을 2~4개 그룹으로 나눠 각 동작을 스스로 변주하도록 주문했다. 장 감독은 1990년대부터 현대무용 안무가 안은미의 ‘바리-이승편’ ‘사심없는 땐쓰’ 등을 비롯해 국립무용단의 ‘회오리’, 연극 ‘페리클리스’ 등 수십 편의 공연에 음악 감독을 맡았다. 방지영 국립무용단 책임 PD는 “장 감독이 ‘춤의 대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시했다. 춤을 전공하지 않아 오히려 의사소통을 명확하게 한다”고 말했다.
두 영화인의 무용 대결은 최근 영화, 패션 등의 유명 인사들이 무용 제작에 참여하는 유행의 한 단편이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는 2012년 현대무용가 안성수가 안무한 국립발레단의 ‘포이즈’에서 의상, 무대디자인, 영상, 음악, 연출을 맡았고 이듬해 국립무용단의 ‘단’ ‘묵향’을 연달아 만들었다. 6월에는 영화 ‘마담 뺑덕’ ‘헨젤과 그레텔’의 임필성 감독이 국립무용단의 ‘적’을 연출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 ‘고진감래’를 만든 설치미술가 박찬경도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차원’을 연출했다.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다른 장르와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으려는 무용계 시도는 꾸준히 있었는데, 특히 최근 1~2년 사이 급속히 유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기량 국립무용단 단원은 “무용수들은 모든 표현을 최대치로 표현하려 하지만 외부 연출가들은 이걸 차단하려는 지시가 많은데 결과적으로 춤의 여백이 조명 의상 무대 등과 조화를 이룬다”며 장르간 협업의 장점을 지적했다. 다만 작품 제작기간이나 유행 주기가 짧은 무용계 풍토에서 이런 협업이 이벤트성 행사로 그칠 우려가 지적된다. 심 평론가는 “장기 제작 방식을 모색해 서로 다른 두 장르를 접목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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