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보 법안들을 대폭 수정한 데 대해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상당수 언론은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면서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피맺힌 일제 침략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선 일본이 다시 동북아를 휘젓고 다니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미동맹을 중시해온 인사들은 오히려 일본의 선택을 환영한다.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해올 경우 일본이 한미일 3각 안보체제하에서 미국을 더 잘 지원하게 되고 이는 결국 우리 안보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한일관계는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매개로 한 정치군사적 제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관계는 흔히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라는 상반되는 동맹 딜레마를 어느 정도 동반한다. 다만, 이번 일본의 결정은 우리에게 방기보다는 연루에의 우려를 더 강하게 주는 듯하다. 향후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중국 견제에 열을 올리는 미국의 대리자로서 각을 세우게 되면 우리는 원치 않게 일본이 만든 싸움판에 휘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걱정은 일본이 행동을 절제하고 이를 미국이 잘 제어한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집단적 자위권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인 개별적 자위권을 보완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직후 유엔헌장에 처음 등장했는데, 실상은 그 취지를 왜곡하기 일쑤였다. 유엔 안보리의 허가 없이도 자위권 확보를 위해 제3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허용하는 이 권리가 수많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남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툭하면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 삼아 전쟁에 개입해 왔고, 여기에 많은 동맹국들이 사실상 ‘동원’되었다.
전형적인 예로 베트남전쟁을 들 수 있다. 미국은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면서 1965년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워 북베트남 폭격을 개시했다.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도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이유로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75년 사이공 함락 때까지 미군 5만 6,000여명, 한국군 5,000여명이 전사했고, 남북 베트남 및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베트콩) 소속 90만명 이상이 숨졌다. 이 전쟁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명분이 베트남 인민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2004년 “이라크가 대량파괴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거짓 정보로 촉발된 이라크 전쟁에서도 한결같이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명패가 내걸렸다. 하지만 지금껏 집단적 자위권을 내걸고 제3국의 전쟁에 뛰어든 어떤 나라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명목으로 남의 나라 전쟁터로 달려간 군대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군대는 애초부터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이지 않을까.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세계가 더 안전해지고 평화로워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집단적 자위권은 미국이 전쟁을 만들고 동맹국을 연루시키는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은 자진해서 미국에 연루되어 남의 나라 분쟁에 달려가겠다고 나선 셈이다.
일본의 결정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와 미일동맹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경계는 하되 최대한 안보적 실리를 챙기자는 전략적 용일(用日)을 주장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은 사실상 미일동맹의 하부 동맹이다. 그만큼 한국이 취할 운신의 폭은 좁고 미일동맹에 연루될 공산은 더 커졌다. 이를 구조적 운명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미군과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비겠다는 일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정말 진지하게 따져볼 일이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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