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위변조방지 신기술설명회’ 행사장엔 주유소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기가 서 있었습니다. ‘전자봉인 보안모듈’이란 칩이 장착된 주유기 회로기판을 조작하자 기계 가동중단 경보음과 함께 주유기 위치가 모니터 지도상에 표시됐습니다. 주유량을 속이려 기판에 손을 댔다간 ‘봉인’이 풀려 주유기가 멈춰서고 관리당국에 신고된다는 내용의 시연이었습니다. 공사 직원은 “전기ㆍ가스ㆍ수도 계량기, 차량미터기, 사물인터넷 등 불법 조작을 막을 필요가 있는 제품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안칩”이라며 행사장을 찾은 기업인들에게 기술 구입을 적극 권했습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내년부터 도입되는 조작방지 주유기에도 이 칩이 들어간다는 홍보도 뒤따랐습니다.
다른 부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양이나 특수물질을 용지에 넣어 위변조를 막는 기술들로 호객이 한창이었습니다. 위조 방지 문양의 유무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선보였습니다. 중국시장에 진출한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카피(copyㆍ복제품)를 막는 것이 관건”이라며 플라스틱 용기에도 쉽게 부착할 수 있는 필름형 보안기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처음 행사를 열었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김화동 조폐공사 사장은 설명과 질의로 시끌벅적한 7개 부스를 바삐 오가며 방문객을 손수 응대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돈을 찍어내는 기관 정도로 조폐공사를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공사 고위층까지 총동원돼 특허기술 판매에 나선 이날 행사가 사뭇 낯설게 느껴질 법합니다. “지도에도 기관 위치를 숨긴 채 화폐 제조에 전념해온 우리가 이런 세일즈 행사를 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공사 임원 말을 듣고 보면 당사자들에게도 상전벽해의 상황인 모양입니다. 업무 특성상 국내 최고, 세계 5위 수준의 위변조 방지기술을 축적하고도 “이걸 어디에 써야할지 몰랐다”(김화동 사장)고 할 정도니까요.
공사가 부랴부랴 보유기술 상업화에 나선 것은 ‘천직’으로 알던 화폐 제조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신용카드 및 온라인 뱅킹 보편화, 5만원 고액권 발행으로 공사 전체 매출에서 화폐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62.0%에서 2014년 28.4%로 급감하면서 신사업 발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내달 1일로 창립 64주년을 맞는 조폐공사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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