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5만원 이하...생계형 체납인 듯
건보공단, 800여명 재산 압류
인재근 의원 "실태 조사해 배려를"
공단 측 "형평성 고려 방안 찾아야"
독립운동가 이철영(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손자인 이종구(84)씨는 2년 째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배운 게 없어 과수원 농사와 함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주어지는 연금 100여 만원을 가지고 근근이 살아왔지만 3년 전 아들의 사업 실패로 집과 농지 모두 경매에 넘어간 뒤로 건강보험료는 물론 생계조차 위협을 받고 있다. 이씨는 “그나마 연금이 들어오지만 빚 갚고 홀로 생활비를 쓰는 데도 빠듯해 연체된 수 십 만원의 건강보험료는 아무리 독촉해도 낼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씨는 연금을 받을 수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연금 수급권이 없는 다른 후손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독립유공자유족회 관계자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후손들은 고령에 뚜렷한 직업도 없어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 이들에게 건강보험료는 사치”라며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참으며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건보료를 체납한 독립ㆍ국가 유공자(후손 포함)가 1,0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5년 넘게 체납한 보험료가 모두 15억원으로 집계됐으며, 건보공단은 이들 가운데 800여명의 재산은 압류한 상태다.
22일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한 독립ㆍ국가유공자 1,099세대가 건강보험료를 체납했다. 체납자는 국가유공자가 524세대, 국가유공자의 유족 512세대, 독립유공자 5세대, 독립유공자 유족 58세대 등이다. 체납기간은 6개월~1년 미만(348세대)이 가장 많았고, 1년~2년 미만(264세대), 2년 이상 3년 미만(144세대) 등의 순이었다. 5년 이상 체납한 세대도 142세대나 됐다. 통상 체납기간이 1년이 지나면 압류에 들어가는데 건보공단은 이 중 818세대의 재산을 압류했다.
이들 대부분은 ‘생계형 체납자’로 추정된다. 한 독립유공자 가구는 5년 동안 200만원 정도의 건보료를 체납했다. 매월 약 3만3,000원의 보험료가 부과된 것인데, 건보공단은 월 건보료가 5만원 이하인 가구를 저소득층으로 보고 있다. 건보료 5만원 이하는 보험료도 못 낼 만큼 재산과 소득이 적기 때문에 이들의 체납은 ‘생계형’이라는 얘기다. 지하 월셋방에 살았던 ‘송파 세모녀’의 월 보험료가 5만140원이었다.
또 이들의 체납액은 총 15억원 정도인데, 1,000가구가 길게는 5년 넘게 체납한 것치고는 매우 적은 액수다.
인재근 의원은 이날 건보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공자들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므로 국가에서 책임지고 최대한 예우를 해야 한다”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체납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하고,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상철 건보공단 이사장은 “동의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건보공단 관계자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이분들만 압류에서 제외시키기는 어렵다”며 “건강보험료를 못 낼 정도로 생활이 어렵다면 건강보험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다각적인 지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생계형 체납자는 모두 100만 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건보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월 보험료가 5만원 이하인 저소득 가구 총 98만1,000세대가 1조1,926억원의 건보료를 체납했다. 생계형 체납가구는 2011년 104만 세대, 2012년 105만 세대 등 100만 세대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취약계층의 건보료를 지원하는 사업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사회보험 지원사업인 두루누리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다. 김성주 의원은 “생계형 체납세대가 줄지 않고 있으며 체납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며 “정부의 지자체 건보료지원사업 중단 요구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