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의 숨겨진 부실이 지난 2분기 3조2,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영업손실로 드러났을 때도 국민 다수는 오히려 회생과 정상화를 바랐다. 다시 한번 일어나 세계1등 조선 강국의 영예를 회복하고 젊은이들이 힘써 일할 탄탄한 직장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그제 국회 정무위 산업은행 국감에서는 대우조선이 부실을 키우던 2000년 이후 전직임원과 권력기관 출신 낙하산 인사가 대거 포함된 총 60명의 고문과 자문을 임명해 억대 연봉을 펑펑 나눠주는 돈 잔치를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조선은 대우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 2000년부터 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돼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로 운영돼왔다. 산업은행은 회사 재건을 위해 마땅히 강력한 관리ㆍ감독에 나서야 했고, 경영진은 경영 정상화에 힘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국감에 나선 전ㆍ현직 대우조선 경영진과 산업은행 관리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실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면피성 발언에 급급했다. 이런 식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만경영이 만연하면서 고위 관료, 예비역 장성, 국가정보원 간부 등이 별 실적도 없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눈먼 돈을 끼리끼리 나눠먹은 셈이다.
개탄스러운 건 대우조선의 감시견 역할을 했어야 할 산업은행 고위 임원들과 회사 사정을 뻔히 알만한 대우조선 전직 임원들까지 퇴직 후 전관예우 차원에서 대거 고문과 자문을 맡아 단물을 빨았다는 사실이다. 산은에서는 전직 부총재, 재무관리본부장, 부행장 등이 억대 연봉을 챙겼고, 대우조선에서는 전 사장 등이 이런 식으로 수 억대의 연봉과 고급 사무실, 자녀 학자금까지 받아갔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산업은행은 2년 전 감사원에서 유사한 지적을 받았음에도 대우조선의 실적 없는 억대 연봉 고문ㆍ자문을 방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산은의 감독의무 태만과 대우조선 경영진과의 유착이 대우조선을 망쳤다는 얘기다.
대우조선엔 2001년 2조9,0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1970년대 이래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막대한 수출실적을 올렸던 국내 조선산업에 대한 공적 지원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국민적 기대를 오히려 방만경영의 방패 삼아 정책금융기관과 무책임한 경영진은 그 동안 제 뱃속 챙기기에만 골몰해왔다. 정부는 지난 2분기 실적 파동 이후 지금도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며 1조 원 이상의 추가자금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업이 여전히 중후장대 산업의 정점으로서 국내 산업구조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애써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공적 지원이 투입되는 순간 눈먼 돈으로 전락해 애먼 사람들의 배만 채우는 식은 더 이상 안 된다. 조선산업의 회생을 위해서도 산은이든 대우조선 전ㆍ현직 경영진이든, 부실 책임자부터 엄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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