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이 차기전투기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를 선택하는 대가로 지원 받기로 한 핵심기술이 미국 측 거부로 무산됐다. 군 당국은 작년 9월 총40대의 F-35A를 들여오기로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계약하면서 25건의 기술지원을 받기로 약속 받았으나 이중 4건의 핵심기술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이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록히드마틴사 측은 계약 당시 해당 기술이 수 조원 상당의 가치가 있다고 홍보한 터였다.
더 큰 문제는 이전이 거부된 기술이 우리가 추진 중인 20조원 규모의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KFX)의 핵심장비라는 점이다. 이 중 위상배열(AESA)레이더는 기존 레이더보다 신속하고 정밀하게 목표물을 탐지ㆍ추적할 수 있고, 전자전 능력까지 갖춘 최첨단 장비다. 핵심 전자장비 도입이 어렵다면 KFX 사업에 차질은 불가피하다. 방위사업청은 “국내 개발 및 국제 협력을 통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어느 경우든 부작용이 크다.
우리 손으로 첨단 레이더를 개발해 장착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군 관계자들 말대로 위상배열 레이더 개발에 통상 20~30년 걸린다고 하면 2025년으로 정한 KFX 개발완료 시점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유럽 몇몇 국가가 기술이전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처구니 없긴 마찬가지다. 당초 7조3418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여 F-35A를 선택한 이유의 하나는 기술이전을 염두에 뒀던 건데, 다시 거액을 들여 기술을 사와야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F-35A를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구매한 터라 미국의 기술이전 거부가 합의를 어긴 것은 아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방사청과 군 당국, 나아가 우리 정부의 협상력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미국 정부가 위상배열 레이더 등 핵심기술을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아무런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짐작했다면 정부가 외교력을 동원해 기술을 이전 받는데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공군의 노후전투기를 대체하고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며, 항공우주산업의 비약적 발전이 기대되는 건국 이래 최대 무기사업이라는 KFX가 정부의 안이한 판단으로 차질이 빚어질 위기에 놓였다. 철저히 진상을 파악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미국 일변도의 무기구매 방식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군에서는 한국이 미국산 무기 최다구매 국가 중 하나인데도 미국 측이 무기를 팔고 기술이전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미국 전투기를 구매할 때마다 핵심기술을 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번복하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유럽에서 기술을 사올 거면 차기전투기 사업 때 F-35A 대신 유럽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선정하는 게 나았다는 푸념도 나온다. 언제까지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정책적 고려에 매달려 미국의 봉 노릇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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