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40개 홈런을 쳐낸 스타이기는 했다. 다만 그 곳이 한국 프로야구였다는 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그의 레그킥을 불신했다. 팀은 훨씬 몸값 비싼 주전 내야수들로 포화상태였다. 이런 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백업 선수로 소모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강정호는 주눅들지 않았다. 드물게 출전기회가 왔을 때 강정호는 스스로 실력을 입증했다. 시즌 초 공을 맞히고 부지런히 달려 제 몫을 하던 그는 선발출전이 어느 정도 보장되자 본연의 장타력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며 영악하게 큰 무대에 적응해 갔다. 강정호는 결정적인 순간 안타를 치거나 실책을 범했을 때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경기에 자주 나가다 보니 공이 익숙해졌다. 득점기회에서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잘 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다”고도 했다. 3할대의 놀라운 타율 도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도 “올 시즌 경기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오르내릴 수 있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나이 이제 스물 여덟이다.
고교 졸업 후 국내 프로야구에서 9년을 보낸 강정호에겐 자연스러운 것인지 몰라도, 이제 겨우 사회에 발을 내디뎠거나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또래 청년들과 비교하면 그는 한참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 최고의 유격수로 대우받다가 오늘 경기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처지가 그라고 녹록했을 리 없다. 하지만 팬들이 “안타 치고 인상 좀 쓰지 마라”고 농담할 정도로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정호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살릴 줄 알았고, 오늘의 승부가 끝이 아님을 알았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은 승리했을 때뿐만 아니라 패배했을 때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안다. 자신의 잘못을 두고서 남을 탓하지 않고, 오늘의 패배 후에 내일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마저 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정호에게 새삼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이런 이유다.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첫 야수라는 사실보다, 최희섭 이후 처음으로 ‘이달의 신인’으로 꼽힌 한국 선수라는 기록보다, 치열한 경쟁을 의연하게 감내하고 이겨나가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랬던 강정호가 쓰러졌다. 병살을 방해하기 위한 상대팀 코글란 선수의 위험한 슬라이딩으로 강정호는 시즌 아웃 이상의 많은 것을 잃게 됐다. 467타석을 소화한 그는 규정타석에서 불과 35타석이 모자라 내셔널리그 20위권의 성적이 무위로 돌아갈 처지다. 부상 직전 강정호는 내셔널리그 타율 19위, 출루율 20위, 장타율 21위, OPS(출루율+장타율) 19위에 꼽혔다. 475타석부터 받게 돼 있는 최소 7만5,000달러의 보너스도 날아갔다.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이 부상이 올해나 내년 시즌에 그치지 않고 남은 선수 인생의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루키 시즌이 화려했던 만큼 더 아쉽고, 아깝다.
하지만 넥센 염경엽 감독의 말처럼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강정호가 자랑스럽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그의 메이저리그 첫 해는 공식 기록 대신 팬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제 강정호 선수가 다시 의연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염경엽 감독은 “강정호는 한국시리즈에서 실책을 하고도 ‘내가 홈런 쳐서 이기면 된다’며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를 넘어뜨린 이 부상도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영리하게 메이저리그에서 자기 자리를 구축해 온 강정호가 부상의 늪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현명함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열심히 살아도 불현듯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삶에서, 배반당한 인생이 억울하고 후회스러울 모든 이들에게, 통쾌하게 인생을 전복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약속대로 “더 강해져서” 경기장으로 돌아올 그를 기대한다. 일어나라, 강정호!
김희원 문화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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