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 이수경(52)은 동양적인 미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신성화하는 것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02년부터 시리즈로 만든 대표작 ‘번역된 도자기’다. 멀쩡한 도자기를 일부러 깨트려 새로운 모양으로 이어 붙였다. ‘가장 멋진 조각상’ 연작도 비슷하게 탄생했다. 공자 조각상, 불상, 기독교 성상 등 신과 성인(聖人)을 형상화한 조각에서 머리, 눈, 코, 입, 팔다리와 복장을 하나씩 가져와 조합해 만든 상이다. 이수경은 “도자기나 성상은 자체로서 미적으로 완벽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불안하고 답답해 보인다”며 “그 긴장을 깨고 손이 가는 대로 다시 붙여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수경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도자기와 성상은 일단 이상하지만 기묘하게 친숙하다.
이수경이 서울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고 있는 신작전 ‘믿음의 번식’은 이 기묘한 기분을 전시장 전체로 확장시켰다. 영상작품 ‘하얀 그림자’는 전남 해남군의 대흥사, 일본 니이가타, 대만의 타이난(臺南)에서 열린 축제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번갈아 비춘다. 서사라곤 없이 그저 풍경을 길게 찍었을 뿐이지만, 프로젝터가 천천히 회전하면서 영상이 벽을 타고 움직이고, 영화음악감독 장영규가 작곡한 음악이 깔리면서 관객을 영상 안으로 끌어들인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작가가 이 산만한 축제의 구석 어딘가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이수경은 “동양의 축제 현장에 충만한 대지의 에너지를 내가 느꼈던 것처럼 관람객들도 그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함께 전시된 회화 ‘전생역행그림’ 2점은 이수경이 2014년부터 최면치료를 받으며 보았던 풍경을 그대로 옮긴 작품이다. 동양적 환상을 이미지화한 그림은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보이는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킨다. “내 유전자 속 어딘가 고구려 고분벽화나 중국의 둔황 석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는데, 잘 이해는 안 돼요. 서양화과를 나왔고 서양의 학문을 배웠으니까 말로 표현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얀 그림자’나 ‘전생역행그림’처럼 파편을 주워 모으는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고 있어요.”
결국 이수경의 작업은 이리저리 수집해 쌓은 파편의 더미다. 이수경도 자신을 ‘파편적 한국인, 파편적 아시아인’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완벽한 존재’라고 말했다. “원래는 모두가 완벽한 존재인데, 정작 자신은 그걸 잘 모르니까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 순간 그루브를 타고 작품을 만들려 합니다.” 파편 더미인 자신이지만 지금의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힘이 그의 작품에 드러난다. 12월 20일까지. (02)3015-3248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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