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의뢰인과 사건위임 계약을 맺으면 변호인선임신고서(선임계)를 작성, 사건 관할 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하고, 법원 검찰 등에 변론서를 낼 때 이를 첨부해야 한다. 상품 바코드처럼 사건 담당 변호인을 적시하는 선임계는 사건 처리의 공정성, 투명성 확보뿐만 아니라 변호사 수입에 대한 과세 근거로 활용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러나 최근 적발된 고검장, 지검장 출신 변호사의 선임계 없는 변론활동은 이러한 제도가 무력화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정에서 치열한 사실관계와 법리 다툼을 통해 유무죄를 따져야 할 법조인들이 전관예우 관행에 기대어 전화 한 통으로 유무죄와 양형을 거래하듯 청탁하고 협상하는 현실은 일반 국민들로서는 땅을 칠 일이다. 더구나 이들에게 변론을 의뢰한 이들이 대부분 여러 명의 변호인을 두었거나 아예 “선임계 제출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니 저잣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이나 검찰에 재직 중인 공직자들은 “전관 여부를 떠나 ‘전화 변론’을 하는 선배 변호사들에게 선임계부터 내라고 매정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지만 그런 단호하지 못한 태도가 법 질서를 어지럽히고 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관 변호사들의 비밀 전화 변론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법조인들은 ‘좋은 게 좋은’ 자기들만의 관계가 던져주는 단맛에 안주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얽히고설킨 법조계의 이 고질적 관계와 병폐로 인해 법 정신의 공평무사한 발현이 방해 받고 정직한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각성해야 한다. 변호사단체 홀로 이 전관예우의 폐해를 지적하고 단속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법원과 검찰이 호응해 자정을 결의하고 방지책을 세워 실천하지 않는다면 더 큰 화근이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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