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안읍성. 한국관광공사 제공
고향처럼 푸근한 풍경이 전남 순천 낙안면에 있다. 낙안읍성마을이다. 성곽길 걸으며 초가집들 옹기종기 앉은 모습 보고 있으면 마음 차분해지고, 잊고 지낸 어린 날의 동경도 되살아난다. 농촌에서도 초가집 보기 힘들어진 요즘,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 예쁜 집들은 참 흥미로운 볼거리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전남지역, 특히 낙안은 평야가 많아 이를 노리는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 등 관청건물과 함께 약 100여채의 초가집이 복원돼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성 안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옛 성안에 사람이 사는 곳은 이곳 낙안읍성과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정도다. 이러니 성 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시를 위해 빈 초가집만 덩그러이 들어앉은 것과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그래서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제302호)으로 지정됐다. 전국 각지에 있는 읍성 가운데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11개, 이 가운데 낙안읍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릴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성안 돌담길 따라 걸으며 마을 기웃거린다.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착각도 즐겁다. 동헌(관아) 마당을 거닐며 가을 볕 즐기고 객사에 앉아 게으름도 부린다. 객사 뒤편 하늘로 치솟은 팽나무도 잊지 말고 구경한다. 시간 갈수록 그 옛날 흥성거림이 오롯이 살아나 가슴이 절로 벅차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함께 호남의 명루로 꼽혔던 낙민루 등도 볼거리다. '박의준가옥' '이한옥가옥' '임대자가옥' 등도 기억한다. 천천히 살피면 같은 듯 각각 다른 구조와 형태가 이마를 '탁' 치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하게 끌리는 초가집의 매력을 알게 된다.
낙안읍성에서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상설로 운영된다. 판소리 배우기, 가야금 연주, 붓글씨 쓰기, 천연 염색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주말에는 풍물 공연과 순라(순찰 군졸) 교대 등의 행사가 열리니 이 또한 챙겨 즐긴다.
성곽을 밟으며 걸어도 좋다. 성곽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은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성곽길이는 1.7km. 쉬엄쉬엄 걸어도 한 두 시간이면 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초가지붕 다닥다닥 붙은 풍경이 어찌나 서정적인지, 가슴 울컥한다. 저녁밥 지을 무렵이면 감정은 더 고조된다. 초가마다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문학적 감수성을 마구 자극한다. 이 아름다운 마을을 배경으로 숱한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됐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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