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ㆍ미사일 위협은 北 소외의 반영
손 잡아 달라는 강력한 신호일 수도
8ㆍ25합의 발판 삼아 대화 모색해야
요즘 한반도의 하늘은 높고 푸르기만 하다. 쾌청하고 선선한 날씨를 선사하는 북방계 고기압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풍부한 햇빛에 과일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들판은 어느덧 황금물결이다. 평화의 노래와 풍년가가 울려 퍼질 만한 결실의 계절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외교안보 기상은 전혀 딴판이다. 8ㆍ25 남북 합의로 반짝 했던 대화분위기는 초가을 바람에 매미소리 잦아들 듯 금새 가라앉고, 다시 갈등과 대결의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북한이 내달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즈음해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4차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치고 나서면서부터다. 실제로 북한이 인공위성발사라는 명목 하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이어 핵실험까지 강행하면 한반도는 또 다시 심각한 긴장상태에 빠지게 될 게 분명하다.
북한은 평화적 우주개발은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권리이며, 미국의 가중되는 대조선 압살책동에 대처해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은 정당한 자위적 조치라며 기세가 등등하다. 하지만 그렇게 등등한 기세 이면에는 최근 동북아 정세 변화 속에서 북한이 내몰리고 있는 소외와 고립에 따른 초조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현재 북한이 손을 내밀어 구원을 청할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말 그대로 고립무원이다.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과 중국 전승절 참관을 통한 한중 밀착은 좀처럼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북중관계를 한층 소원하게 만들었다. 22일부터 시작되는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의 방미와 미중정상회담, 내달 16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10월 말에서 11월 초로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담 등 일련의 대형 외교 이벤트들도 하나같이 북한에는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할 게 틀림 없다. 동북아에서 북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그만큼 소외와 고립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게 북한의 판단이고 그래서 장거리 로켓과 핵 실험 카드를 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과거처럼 위기를 조성해 협상을 이끌어냈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먹힐 상황은 아니다. 중국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추가 핵실험 위협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경하다. 왕이 외교부장은 19일 9ㆍ19공동성명 10주년 기념 세미나에 참석해 6자회담 구성원들의 유엔 결의이행 의무를 강조하고, 한반도 긴장 조성 행동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발했다.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는 게 역력하다.
북한도 이런 기류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로켓발사와 핵실험 강행 이후 닥칠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 누군가가 말려주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가 우리 정부의 역할이 통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금 구도에서는 중국이나 미국이 나설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8ㆍ25합의라는 자산이 있다. 더욱이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에 대한 북측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게 확인됐다. 과거와 달리 뭔가를 해볼 여지가 생겼다.
물론 북한이 빼든 카드를 다시 거둬들이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은 필요하다. 적어도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줘야 한다. 북한의 위협에 굴복해 유화조치를 취하는 것에 못마땅해 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궁지로 몰린 북한이 예고한 대로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했을 경우 우리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 미사일 능력은 더욱 향상되고 소형화 경량화를 향한 북한의 핵 능력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가 계속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워 가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 체제를 소외시키고 궁지로 몰기보다는 6자회담이든 또 다른 틀을 모색하든 논의에 참여시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극심한 소외감을 느끼는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면 전혀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도 있다. 정부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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