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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초상화를 보며

입력
2015.09.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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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후배가 곧잘 초상화를 그려준다. 지금 넉 점 정도 가지고 있다. 닮은 것도 있고, 아니다 싶은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거나 후배가 생각하는 내 얼굴이 그렇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그 중 마음에 드는 건 실로 수놓은 그림이다. 한 땀 한 땀 바늘로 꿰어 얇은 유리막까지 씌운 정성이 갸륵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양면이라는 게 흡족하다. 한쪽은 붉은색, 한쪽은 회색 바탕이다. 붉은색 쪽이 더 실물과 닮았지만, 무슨 영화 속 악당 캐릭터를 묘사한 듯한 회색 쪽도 나쁘지 않다. 닮고 안 닮고를 떠나 후배가 내 마음 안쪽을 이리저리 살펴본 후 세공을 가한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 그건 오로지 그 녀석만 파악하고 그려낼 수 있는, 나조차도 살필 수 없는 마음 속 배면과도 같다. 사실,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카메라로 똑같은 사람을 찍는다 해도 백이면 백 그 질감과 형태가 다르게 나온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은 늘 바라보는 상대에 따라 다른 얼굴이 된다는 얘기. 억지로 연기하거나 꾸며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고정된 얼굴이란 없다. 마스크 따위를 쓰지 않는 한, 얼굴은 문명인의 신체 중 늘 유일한 알몸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모두가 다 보고 있다. 무표정마저도 어떤 낌새이고 기척이다. 후배가 그린 초상화를 본다. 내 얼굴이되, 나는 저 사람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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