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어쩌다 어른? 아등바등 살다가 '나'를 잃은 우울한 40대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어쩌다 어른? 아등바등 살다가 '나'를 잃은 우울한 40대들

입력
2015.09.21 16:52
0 0
백가흠 작가는 네 번째 소설집 ‘사십사’를 통해 “어쩌다 어른이 된 우울한 사십 대들”의 초상을 그렸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백가흠 작가는 네 번째 소설집 ‘사십사’를 통해 “어쩌다 어른이 된 우울한 사십 대들”의 초상을 그렸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스물이 불안하고 서른이 위태롭다면 마흔은 쓸쓸하다. 무엇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고,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젊은 나이. 백가흠 작가의 새 소설집 ‘사십사’(문학과지성사)는 정신의 파산을 남의 집 불 보듯 구경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쓸쓸한 마흔 넷들의 이야기다.

“‘훼손된 인간은 구원될 수 있을까’라는 것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질문이에요. 나이를 먹을수록 이 질문이 더 크게 다가와요. 나이 들어 망가진 인간은 회복이 가능할까요?”

마흔 넷을 3년 앞둔 작가의 관심사는 온통 ‘잘 늙을 수 있는 가능성’에 쏠려 있었다. 그가 말하는 훼손의 대상은 건강한 정신, 양심, 부조리 앞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반감 같은 것들이다. 부지불식 간에 마모된 정신이 복구될 수 있을까란 질문 앞에서 작가가 자신을 비롯, 40대들에게 내놓은 답은 적나라한 비관이다. 9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사회에서 자리잡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어느새 폐허가 된 정신의 집터를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흰 개와 함께한 아침’에서 주인공은 오직 교수 자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남자다. “형은 진보의 견해도 없고 보수 생각도 없어. 전공에도 주장도 없고 반대도 없어. 같이 살아도 사랑도 없고, 언제나 같이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도 없고, 줏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있는 게 고작, … 아부가 전부야, 시발. 인간이 그냥 깃발이야. 계속 나부껴.”

술자리에서 후배의 노골적인 시비에도 남자는 침묵을 지킨다. 모욕을 견디는 것은 삶을 평탄하게 다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후배는 이어 남자가 10년 전 동거했던 여자의 자살 소식을 전한다. 강사 시절 동거했던 학부생 현수는 남자에게 접근한 또 다른 학부생에게 머리채를 잡혀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났다. 두 여자의 악다구니 앞에서 담배를 피워 물던 남자의 머릿속에서 현수에 대한 기억은 이미 지워지고 없다. 남은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여자가 꼴 보기 싫다는 생각, 그리고 교수 임용 이후 부쩍 들어오는 선 자리 여성들의 사진이다.

“늙음의 비극은 건강했던 시절의 기억을 다 잊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삶의 방향성을 망각하고 나면 남는 건 뻔뻔해지는 일뿐이에요. 우리 사회가 개인을 그렇게 만들어요. 주류 혹은 그 근처라도 가려면 자존심 가지고선 불가능해요.”

간과 쓸개를 빼놓은 채 몸집만 불어난 사십 대들의 삶은 골다공증 걸린 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사십사(四十四)’의 주인공 제민은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겉 보기엔 잘 나가는 44세의 ‘골드 미스’다. 꾸준한 요가로 44사이즈를 유지하고 생일엔 홀로 값비싼 해외 패키지 여행을 떠나지만, 이면은 유부남과의 연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백화점에서 석 달 새 구두를 세 번이나 교환하는 ‘진상’이다. 첫사랑이던 유부남 교수는 10여년 만에 중늙은이가 되어 나타나 제민에게 애절하게 구애한다. “다시 내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말이야. … 그땐, 내 영혼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 제민아, 이거 진심이야.”

결혼하기엔 늦었고 욕구만 채우기엔 너무 많은 삶이 남은 제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아마도 44사이즈를 유지해 연애시장에서의 가치를 최대한 연장하는 것뿐이리라.

먹이사슬 안에서 아등바등하느라 ‘나’를 방치한 이들에게 탈출구는 없을까. 이에 대한 작가의 말은 희망 같기도, 더 깊은 절망 같기도 하다. “사회적 자아가 비대해질수록 개인으로서의 ‘나’는 왜소해져요. 어느 선을 넘어서면 ‘나’는 깔려 죽을 수도 있어요. ‘나 왜 이렇게 됐지? ‘라는 물음만 있어도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거예요. 근데 그 질문이 어렵죠. 왜 그렇게 됐는지 기억을 못할 테니까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