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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9조는 일본인 집단양심… 아베, 개헌 못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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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9조는 일본인 집단양심… 아베, 개헌 못할것"

입력
2015.09.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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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기 점령군에 강제됐지만 이후 일본인이 스스로 선택해

아베정권 개헌 시도하면 무너질 것

유엔, 전쟁 방지에 너무 무기력

쇄신 위해선 국가 간 시민 연대 필요

가라타니 고진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특별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와 보편 평화구상'에서 "동아시아에서 평화에 대한 논의는 결국 도발하는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며 이 맥락에서 헌법 9조는 평화유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가라타니 고진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특별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와 보편 평화구상'에서 "동아시아에서 평화에 대한 논의는 결국 도발하는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며 이 맥락에서 헌법 9조는 평화유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최근 아베 정부는 이웃국가를 도발하며 두려움과 증오를 퍼트리고 있으나 이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뿐더러 일본 헌법 9조의 개헌으로 감히 이어지지 못할 겁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74)이 21일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동아시아 평화센터와 네이버 문화재단 ‘문화의 안과 밖 자문위원회’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개최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특별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와 보편 평화구상’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화헌법으로 통하는 일본 헌법 9조가 “일본 국민의 무의식에 뿌리 깊게 박힌 죄의식”이라고 정의했다.

가라타니는 일본의 비평가이자 사상가, 철학자로, 문화비평을 바탕으로 칸트와 마르크스를 아우르는 근현대 철학사상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및 세계의 자본주의, 민족, 국가 구조를 극복할 실천방안을 모색해왔다. 일본 호세이대와 긴키대 교수와 미국 예일대, 컬럼비아대, 코넬대 객원교수를 지냈다. 대중강연을 고사하기로 유명한 그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오랜 인연을 계기로 이번에 방한했다.

이날 ‘영구평화: 역사와 현실을 넘어, 새 철학과 새 대안’을 주제로 3시간에 가까운 발표를 진행한 그는 “일본 보수당은 끊임없이 ‘9조가 점령미군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거나 ‘좌파 지식인들이 국민에게 세뇌한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이는 일본 국민들이 헌법을 이토록 오래 열렬히 지지해온 이유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처음에 전후 헌법이 점령군에 의해 강제된 것은 사실이나, 이후 일본인이 스스로 이를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가라타니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일본의 참전을 원하며 개헌을 요구했지만,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가 이를 거부하고 심지어 사회당에 반무장 운동 전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대신 자위적 해석에 기반해 치안대(자위대 전신)를 창설하는 변칙을 시작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어떤 해석으로도 일 자위대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는데도 일본이 논쟁을 피해갔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해 헌법 9조 지지는 일본 국민의 무의식에 뿌리깊게 박힌 지향이라, 자민당조차 쉽게 바꿀 순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국민에게 9조는 강박 노이로제의 일종이자 무의식적 죄책감의 하나”라며 “자민당은 당의 몰락을 우려해 선거 때 개헌을 이슈화하지 못하면서도 그 근본적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9조에 대한 지지가 단순히 이성이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의식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진작 폐기됐을 것”이라며 “점령미군에 의해 강제된 이 조항을 통해 제1의 본능(공격본능) 포기가 강제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윤리적 양심, 즉 ‘앞으로 전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일본인의 집단양심에 깊이 뿌리 박혔다”고 말했다. 그가 이 같은 견해를 분명히 한 것은 이번 발표가 처음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9일 오전 안보관련 법안의 제·개정이 완료된 직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9일 오전 안보관련 법안의 제·개정이 완료된 직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아베 총리가 전쟁이 임박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주변국과 긴장을 야기하고 여론을 호도했고 대부분 언론이 이에 굴복했다”면서도 “개헌을 제안한다면 아베 내각은 즉각 무너질 것이고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경고했다. 이어 최근 일본 안보법안 통과 과정에서 제기된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언급하며 “일본 국민들은 9조를 영원히 지킬 것이기에 저는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라고 기대했다.

동아시아 평화에 대해서는 “전쟁을 앞뒀던 18세기 말, 19세기 말과 오늘날의 공통점은 모두가 다음 헤게모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제국주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라며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잇달아 겪은 부흥과 쇠퇴 등 세계자본주의의 120년 주기에 따라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는 현재, 유엔은 제1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국제연맹처럼 전쟁을 막기에는 너무 무기력하다”고 지적했다.

또 칸트 이론에 근거해 보편평화 및 영구평화가 가능하려면 동시다발적 세계시민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국에서 국가자본에 대항하는 운동과 각 국가간 시민들의 연대가 있어야 하며 유엔이 쇄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발표에 나선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중국과 대만 문제, 냉전 시에나 있었던 영토권 문제, 미사일 방위권 논쟁 등이 뒤섞인 동아시아는 결코 안전하지도 평화롭지도 못한 상태”라며 “전 세계 2만기의 핵무기 중 3분의 2 이상인 1만6,000기의 핵탄두가 미국, 러시아와 아시아 인근 지역에 몰려 있지 않냐”고 우려했다.

국제안보 대사,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이런 동아시아 지역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로 ▲재래식 지정학적 담론의 부활 ▲민족주의 망령 ▲각국의 국내정치 등 세 요인을 꼽았다. 문 교수는 “일본의 만주사변, 히틀러의 제2차 세계 대전 도발을 만든 것이 지정학적 담론인데 그 이후 다시는 거론된 적이 없는 이 담론을 아베 신조 총리가 다시 꺼내든 현실이 우려스럽다”며 “이런 지정학적 사유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평화를 논하기엔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민족주의의 역사적 뿌리가 깊은 동아시아에서는 각자 희생국으로서 역사에 대한 집단 기억이 강력하게 남아 강력한 힘을 뿜고 있다”며 “일본의 자학사관이 중국의 굴기에서 과거 간도군의 모습을 떠올리고 결국 군국주의로 스스로 회귀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역사가 결국 서로를 더 부정적 방향으로 이끌 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궁극적 해법으로 시민의식의 각성을 촉구했다. 깨어있는 시민이 지정학적 담론이나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정치지도자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한중일이 각각 세계 7위, 1위, 3위의 무역국가라는 지위 위에서 지정학적 담론의 틀을 벗어나고, 편협한 민족주의를 벗어난 공동체를 모색하기 위해 각국의 계몽된 시민들이 지금보다 계몽된 정치지도자를 가져야 보편평화의 구상이 가능하다”며 “이번 안보법안 통과 과정에서 거리로 나온 일본 시민들과 젊은이들에게서 새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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