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생각정원의 첫 책은 황광우씨의 ‘철학하라’ 이다. 보통 출판사를 시작하면 그 출판사의 첫 책은 지인들이 책을 사 읽고 주위에 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불문율은 저렴한 책 가격으로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나 죄송하게도 ‘철학하라’는 금기를 어긴 불순한 책이다. 600쪽이 넘고 가격도 2만5,000원이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안 사신 분들은 ‘비싸서’라는 확실한 변명을 줄 수 있고, 사신 분들에게는 ‘너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1만부를 엿보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사셨을 것이다.
작은 출판사에서 두껍고 비싼 책은 일종의 모험이다. 제작비도 높고, 홍보 자금을 두둑하게 책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싼 책을 론칭한 이유는 나름 이 책이 저자 선생님과 머리 맞대면서 충분히 고민한 기획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학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책 출간 1년 전인 2011년의 대표적인 출판 키워드는 ‘불확실성’이었다. 2009년 금융위기와 국가 부도에 이어, 2011년의 세계는 한마디로 도덕과 자본의 균형이 깨진 ‘자본 우위 사회’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국가는 개인을 보호할 수 없고, 개인이 의존할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각자도생의 혹독한 시대 흐름에서 ‘철학은 무엇에 쓰는 물건입니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작은 실마리를 찾아냈다. 불안의 시대에서 진정한 나, 즉 무너지지 않는 나를 찾기 위해 인문고전의 가치와 혜안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러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유명 고전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전하는 그 보편적 가치와 혜안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이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기획을 논의하면서 저자와 몇 가지 합의에 도달했다. 첫째, 오늘날의 사회체제는 서양의 사유체계에서 비롯된 것들이 다수이다. 서양 인문고전의 지식 지도를 통시적으로 담으면서 그들이 만든 세계의 아웃라인을 파악하고 왜 그들의 세계가 불안정한지를 이야기하자. 둘째, 동양고전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나’를 찾기 위한 단서를 찾는다. 개인의 ‘내면’과 ‘관계’를 조명하면서 ‘나’란 존재를 인식하고 진정한 나의 실체를 복원해보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서양이 만들어놓은 세계 질서의 논리를 이해하고, 이 불안한 사회에서 나를 찾고 내 머리로 철학과 사유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21세기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도 사유와 철학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공자도, 플라톤도, 칸트도 이야기한 바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난세의 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가치는 동일하다. “사유하라, 철학하라”
박재호 생각정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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