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3개로 처음 구분한 것은 1952년 프랑스 인구통계학자 알프레드 소비다. 제1세계로 지칭되는 미국과 서유럽은 시장자본주의를 신봉하며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했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지향한 제2세계는 소련 중심의 체제를 구축했다. 양대 진영에 편입되지 않은 나머지가 제3세계다.
인도 출신의 역사학자 비자이 프라샤드는 “제3세계는 특정 지역을 일컫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인민(People)의 희망을 담아낼 사상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제3세계 프로젝트는 울퉁불퉁한 진실”이라고도 덧붙인다. 이 책은 이상을 꿈꿨으나 실패한 제3세계 투쟁의 역사를 담았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충돌 속에서 엄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인민은 새로운 세계를 꿈꿨다. 전후 독립한 신생국 지도자들은 식민지배와 토착 봉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고, 제3세계 아래 집결해 정치적 평등을 요구했다. 1955년 반둥, 1961년 카이로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이런 개념들이 구체화됐고, 1966년 아바나에서 개최된 삼대륙회의에서 ‘제3세계 구상’의 핵심 요구사항을 정리, 유엔에서 관철했다.
그러나 식민지배가 남긴 한계 또한 뚜렷했다. “투쟁의 열기로 만들어진 신생국들은 사회관계를 효과적으로 재조직하지도, 남겨진 식민지형 국가구조를 분쇄하지도 못했다. 구사회계급과 손잡고 식민지 관료제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제3세계 의제를 무너뜨렸다.” 부채 위기와 제1세계의 세계적 재편성 정책은 결정타였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차지했던 공간은 인종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국수주의 등으로 채워졌다.
저자는 비록 실패했더라도 투쟁했던 당시가 지금보다 의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제3세계 제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있던 시절, 세계는 나아졌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사라진 지금, 세계는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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