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48)는 최근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전용면적 85㎡(32평) 아파트를 3억에 전세로 살고 있던 A씨에게 전세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1억을 더 올려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이 기회에 아예 아파트를 사 보려고 했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딸의 초등학교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1억의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전세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수년간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A씨처럼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은행권의 대출창구는 전세자금 대출에 관련한 문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 (사진제공=연합뉴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농협·기업 등 6대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주택도시기금 전세대출 제외)은 2010년 말 2조281억원에서 올 8월 현재 18조4,925억원으로 9배 넘게 늘었다.
현재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21일 현재 연 2.34%에서 3.74%에 이른다. A씨의 경우처럼 1억을 빌렸다면 1년에 이자를 최고 374만원까지 내야한다는 뜻이다.
신한은행의 전세자금 대출이 4,779억원에서 7조2,643억원으로 15배 이상으로 늘어 6대 은행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 농협은행은 788억원에서 1조777억원으로 14배 가까이 뛰었고, 기업은행도 821억원에서 6,939억원으로 8배 넘게 올랐다. KB국민은행은 5,376억원에서 4조1,772억원으로 8배 가까이, 우리은행은 6,583억원에서 4조4,982억원으로 7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1일 하나·외환은행의 통합으로 탄생한 KEB하나은행도 4배가 넘게 증가했다.
잔액 총액별로는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농협은행, KEB하나은행, 기업은행 순으로 많다. 올해 들어서도 이들 6대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15조8,146억원에서 18조4,925억원으로 16.9% 증가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속에 아파트값·전셋값만 치솟으면서 빚어진 결과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전국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3.33%, 전셋값 평균 상승률은 4.73%로 기록됐다. 특히 수도권은 전국 평균 상승률보다 2~3배 폭등했다. 2년 동안 감정원 공식 통계로도 전국은 10%, 서울은 18% 정도 상승했다. 3억원 아파트 전셋집이라면 5,000만~6,000만원을 더 내야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입주한 새 아파트 전셋값은 더 올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 2013년 9월 입주한 새 아파트의 전셋값 상승률은 평균 35.7%였고, 가구당 평균 1억원 이상을 올려줘야 재계약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KB국민은행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2011년 8월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 평균가격은 2억5,615만원에서 올해 8월 3억5,763억원으로 4년 만에 1억원 넘게 올랐다. 반면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같은 기간 5억4,373억원에서 5억1,213억원으로 오히려 3,000만원가량 떨어졌다.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3%까지 치솟으면서 아예 구매로 돌아서는 수요도 늘어나 수도권 중소형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올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형의 전세가율이 90%를 넘은 곳도 지난달 전세 거래의 12%나 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재계약이 늘고 전셋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는 '홀수해' 주기를 감안하면 올해 전세시장은 지난해보다 불안 요소가 많다"며 "저금리와 정부 규제 완화로 전세 수요가 매매로 전환되고 있음에도 전세 물건 자체가 귀하다보니 전셋값 상승폭도 가파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서연 기자 brainysy@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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