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9월 어느 날 미국 뉴욕 맨해튼의 8살 소녀 버지니아 오핸런(Virginia O’hanlon)이 아빠에게 정말 산타클로스가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아빠는 딸에게 신문사에 물어보라고 권했고, 버지니아는 짧은 편지(사진)를 썼다. “저는 8살이에요. 제 어린 친구들 중 몇몇이 산타클로스는 없대요. 아빠는 ‘The Sun’이 대답해주는 게 옳을 거라고 했어요. 저에게 진실을 말해주세요. 산타클로스는 있나요?”
남북전쟁 종군기자 출신인 ‘뉴욕 선’의 베테랑 기자 프랜시스 처치(Francis Church)에게 저 난감한 숙제가 맡겨졌다. ‘위선에 코웃음 치자’가 좌우명이었다는 처치는 500단어쯤의 짧은, 하지만 두 세기를 이어 세상을 감동시킨 칼럼을 쓴다. 그해 9월 21일자 뉴욕 선 7면에 실린 ‘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란 글이었다.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 산타는 이 세상에 사랑과 관용과 헌신이 있듯이 확실히 존재해. (…) 산타클로스가 없다니! 오 하나님! 그는 살아 있고 영원히 살아 있을 거야.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도 그는 언제나 살아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 거야.”
버지니아와 처치의 애닯고 다정한 문답을 지켜본 시민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흔쾌히 말하게 됐다고 한다. 또 그 믿음을 잇는 노력, 즉 둘의 사연을 환기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1932년 NBC는 그들의 사연을 칸타타로 만들었다. 71년 버지니아가 숨진 뒤 그의 친구들은 출판사를 차려 그림동화 ‘Yes, Virginia’를 출간했고, NBC는 74년 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그 해 에미상을 탔다. 96년에는 뮤지컬이 만들어졌고, 2003년 12월 맨해튼 ‘로드 앤 테일러 백화점’ 유리창에는 저 문구 “Yes, Virginia…”가 커다란 장식으로 내걸렸다.메이시스 백화점은 난치ㆍ불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만 100년이던 1997년 9월 21일자 뉴욕타임스는 ‘Yes, Virginia, a Thousand Times Yes’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왜 버지니아의 사연이 그 긴 세월 동안 잊히지 않고 심금을 울려왔는지를 살핀, 덜 감동적인 글이었다. 처치의 답장 같은 글이 지금도 쓰여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매사추세츠대 언론학과 교수 스티븐 시멀다(Stephen Simurda)는 “슬프지만, 누가 거들떠나 볼까 싶다. 아니면 저작권을 사서 TV영화를 만들겠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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