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건강 위한 無방부제, 인공조미료 최소화하는 고집
2013년 일본과 경쟁 위해 부산어묵전략식품사업단 구성
조리복 상의 오른편에 ‘Mr.어묵’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이 남자, 대뜸 “어묵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국내 어느 기업과 비교하는 것도 거부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자칭 ‘어묵씨’인 이유를 알겠다. 사실 국내 어묵시장의 규모는 정확히 추산되지 않는다. 혹자는 올해 전국 시장규모가 5,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지만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한 탓에 그보다 크다는 게 부산 어묵업계의 반응이다. 여기에 고집스러운 Mr.어묵 김형광(사진ㆍ53) 대표가 있는 ㈜고래사 어묵이 있다. 8년 6개월의 연구 끝에 어묵 기름 제거기(탈유기)를 개발해 지난해까지 관련 특허를 3개나 땄다. 같은 해 수산신지식인 최우수상에 선정, 해양수산부 장관상도 탔다. 김 대표의 고집에는 직원들도 혀를 내두른다. 직원들이 “대표님, 이제 다른 것도 좀 첨가하시죠”하면 김 대표는 “어묵 비율이 낮은 게 어묵이야”하는 식이다. 그의 옹골진 어묵 철학을 들어봤다.
-왜 어묵인가
“건강이 좋지 않던 장인어른의 가업을 이어받은 것이 계기다. 어쩌면 장인어른의 어묵사랑은 부산이라는 입지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지리적으로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나는 싱싱하고 다양한 어종의 생선을 구입해 어묵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부산시민 입장에서도 어묵은 쉽게 접하고 자주 먹게 되는 든든한 서민의 먹거리였다. 부산 서면에 공장이 들어선 1963년부터 고래사 어묵은 반세기 넘게 부산시민들과 함께 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최근 대기업의 어묵시장 진출로 부산지역 어묵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어묵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대형 유통점에서 부산 어묵의 소비자 선택권도 사라졌다. 우리는 직영매장과 전문 어묵매장을 만들어 다양하고 건강한 어묵을 공급하려 한다.”
-갑자기 이어받은 사업이라 쉽진 않았을 텐데
“그 전까지는 기계공이었다. 주로 공작기계와 중장비 기계를 생산했다. 어묵을 공부하려고 일본 어묵을 수십 차례 견학했는데 국내와 다른 제조 방식이 충격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어묵을 튀긴 후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부직포와 스펀지를 사용했는데 일본에서는 위생문제 때문에 30년 전부터 탈유기를 사용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180도로 튀겨진 어묵에 스펀지를 갖다 대면 환경호르몬 등이 묻을 수 있다. 기계공이었던 탓에 일본의 선진화된 제조공정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같다. 2008년 2월 10억원 상당을 들여 생산라인 2곳에 일본에서 도입한 흡입식 탈유기와 냉각기, 자동 개수기 등을 설치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본 어묵은 두꺼운 반면 우리 어묵은 얇은 사각형이다. 기름만 빨아들여야 하는데, 어묵이 얇다 보니 동그랗게 말렸다. 지친 직원들은 그냥 스펀지를 쓰자고 했다. 나는 건강한 먹거리는 위생적으로 제조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8년 간 롤러를 1㎜씩 조정했다. 기계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제는 우리 기술이 일본을 앞선다.”
-지난해 부산 어묵의 르네상스를 선언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도권 공급ㆍ유통망이 갖춰진 1995년이 부산 어묵의 부흥기였다. 그러다가 부산 어묵기업이 대기업에 인수되는 등 부산 어묵의 자리가 흔들린 게 사실이다. 르네상스를 내다본 이유는 이제 경쟁할 준비가 됐기 때문이다.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어묵 생산의 위생과 소비자 건강, 그리고 다양성이다. 일본 기업인들이 고래사의 탈유기를 견학하고 이제는 엄지를 치켜세운다. 400년 역사를 가진 일본 어묵시장에도 없는 위생적인 생산 기술을 50년 역사의 한국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생산된 먹거리는 소비자 건강에도 좋다. 식용유에 푹 담그는 제조 방식은 기름기가 지나치다. 그래서 우리는 어묵을 쪄서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기름에 튀길 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식감을 낼 수 있다. 현재 시장에 내놓은 고래사 어묵의 종류는 100여 가지에 달한다. 특히 최근 시판한 생선살로 만든 어묵면(어우동)는 야심작이다. 알다시피 국수의 조리방법은 다양하다. 어묵의 다양한 조리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방부제를 쓰지 않고 인공조미료를 최소화하는 고집도 언젠가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Mr.어묵’의 향후 목표는
“유럽, 캐나다, 미국 등에도 어묵을 수출하고 있지만 실상 수출을 어디로 하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본기업과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 소비자들의 국내 어묵을 바라보는 시각을 휴대전화로 비교하자면 일본 어묵은 ‘스마트폰’이고 국내 어묵은 ‘폴더폰’ 정도다. 이런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부산 어묵기업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좁게는 국내 대기업, 넓게는 일본 어묵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2013년 부산 어묵기업 7곳으로 구성된 부산어묵전략식품사업단을 구성했다. 앞으로 수산가공단지 조성 등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몇 년 전 일본 라면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모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사막에 나무가 홀로 서 있으면 돋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래 살 수는 없다. 만약 오아시스가 있으면 그에 가려 돋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오래 살 수 있다’고. 우리는 함께 성장해나가려고 한다.”
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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