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의 시리아 지원 암묵적 인정 대신
난민 문제 등 협조 얻어내기 분석
양국 군 회담 조만간 열릴 듯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19일(현지시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 그 시기와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미사일 배치 등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 시리아 사태 해결의 타협점을 모색하기 위해 아사드 정권의 즉각적 축출을 주장했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이날 런던에서 시리아 난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후 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지난 1년 반 동안 아사드가 퇴진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그 시기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한 게 없다”면서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려면) 모든 당사자가 함께 협의해 그 방법론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이어 “미국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러시아는 아사드를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 시리아 폭력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알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의 축출 문제를 놓고 그 동안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시리아사태 해결의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 러시아는 최근 시리아 내 공군기지에 전투기 4대를 배치하는 등 과격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장 저지를 명분으로 시리아정부군에 대한 군사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이 2012년 제네바에서 시리아 문제 해결의 단초로 과도정부 수립을 골자로 한 ‘제네바 코뮈니케’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러시아의 정부군에 대한 군사지원이 전국민의 절반을 난민으로 만들고 있는 아사드 대통령의 권력을 지탱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케리 장관의 이날 발언은 시리아 문제에서 러시아에 한발 양보하면서 현실적 타협점을 찾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아사드 정권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대신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는 시리아 난민 문제 등에서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내고자 한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의 군사지원을 미국이 제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특히 시리아에서 미러 간 우발적 무력 충돌이 더 큰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왔다. 케리 장관은 18일 애시 카터 미 국방장관과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약 1년 만에 처음으로 회담을 갖고 시리아 사태를 논의한 것은 “러시아와 미국의 충돌을 방지하고 더 큰 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시리아 내전 발생의 주범이자 국민들을 전세계를 유랑하는 난민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아사드 대통령에 대해 일정 기간이라도 퇴진을 유보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기만적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시리아 반군이 케리 장관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무부는 18일 러시아에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양국 군 당국자 간 회담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이를 수용하면서 조만간 양측 군 간 회담이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시리아 등에서 온 난민 수만 명이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경 폐쇄로 서유럽 행이 막히자 오스트리아로 몰려들고 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19일 단 하루 동안 그라츠 인근 하일리겐크로이츠에 5,000명, 니켈스도르프에 4,000명 등 난민 약 1만명이 입국했다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에서 넘어온 난민들이다. 요한나 미크라이트너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이웃국가들이 첫 방문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을 준수하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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