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지급해 온 교수 연구보조비 업무성과 따라 주도록 규정 변경
"공무원이라도 연구는 중요 직무" 임금 체불 진정서 제출 등 대응
“월급이 100만원 이상 깎인 지 6개월째 입니다. 대학 본부는 세부 지급 기준이 마련되는 대로 주겠다고 하지만, 정부 눈치만 보는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립대를 돈으로 또 흔드려하는구나라는 생각 밖에 안듭니다.”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 22년 간 학생들을 가르쳐 온 최모(55) 교수는 정부의 ‘연구보조비 성과급 변경조치’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같이 하소연했다.
사정은 이렇다. 국립대는 수십 년 간 매달 급여보전 명목으로 기성회계에서 연구보조비를 지급해왔다. 하지만 기성회비가 등록금 상승의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정부는 지난 3월 기성회계를 없애고 대학의 회계를 일원화하는 ‘국립대학의 회계설치 및 재정운영에 관한 법률’(회계재정법)을 제정했다. 그러면서 대학들이 연구보조비를 ‘업무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도록 바꾼 것이다. 전국 38개 국립대가 정부 시행령에 따라 세부 기준 마련에 나섰지만, 많은 대학들이 학내 협의에 난항을 겪었고 연구보조비 지급을 연기하고 있다. 부산대와 경상대 등 일부 대학 교수들은 7월 지방노동청에‘임금 체불’ 명목으로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교육부는 그동안 법적인 근거 없이 연구보조비가 급여보전용으로 지급됐고, 이를 통해 적잖은 국립대 교수들이 연구비를 부당수령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공무원법 상 국립대 교수는 기본급여와 수당만 받을 뿐, 연구보조비는 급여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2011년 감사원도 대학들이 기성회계에서 급여보존성 경비를 과다하게 지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면 교수들은 연구보조비는 사립대 교수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임금보존의 성격이 있음을 정부가 암묵적으로 인정해왔다는 입장이다. 최근호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의장은 “이제와서 갑자기 말을 바꿨다”라고 주장했다. 공무원이라고 해도 연구활동은 교수들의 가장 중요한 직무이므로 임금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는 “통상임금 인정 요건인 (지급일의)정기성, (대상선정의)일률성, (금액의)고정성이 모두 충족된다”며 연구보조비의 성격을 규정했다.
교수들은 성과급을 통해 정부가 자신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통상의 업무 수행은 실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되며 급여보조로 지급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시행령을 문제삼고 있다. 강의, 논문 작성 등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실적에서 제외한다는 취지로, 학생 상담계획서 제출와 봉사활동, 프로젝트수행 등 본래 연구와 동떨어진 부분에 신경을 쓸 처지라는 것이 교수들의 항변이다. 한 지방 국립대 교수는 “일부 동료들은 자괴감에 빠져 사립대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대 교수들은 부산대 사태로 공론화 된 총장선출 직선제 폐지, 대학구조개혁평가문제 등과 함께 이번 논란이 학문연구라는 국립대의 본질적 기능약화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은 “국립대는 사립대가 하기 힘든 장기적 안목의 과제나 공공성이 높은 연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지금처럼 정부의 무리한 국립대 길들이기가 계속되면 연구는 단기성과 위주로 재편되고 인재들의 이탈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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