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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리면 병원비 드립니다"… 법망 피하는 건강식품 과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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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리면 병원비 드립니다"… 법망 피하는 건강식품 과대광고

입력
2015.09.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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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고객 만족 위한 이벤트" 주장

식품위생법 허위광고 기준 벗어나…식약처선 "문제삼기 어려워" 입장

엄격한 기준없는 건강식품 광고들

"의료를 상술로 이용… 직무 유기" 의료계·법조계, 정부 대응도 질타

‘저희 홍삼을 드시고 감기에 걸리면 병원비를 드립니다.’ 서울지하철 3, 4호선 전동차 안에 나붙은 건강식품 홍보 문구다. 한 흑홍삼 제조업체가 제품 판촉을 위해 벌이는 병원비 지원 이벤트이지만, 광고 내용이 마치 해당 제품을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릴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건강식품 광고가 이처럼 도를 넘고 있는데도 정부는 마땅한 처벌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단속을 손 놓고 있다.

현재 흑홍삼 판촉을 위한 병원비 지원 이벤트를 펼치고 있는 업체는 ‘참다한 흑홍삼’. 이 업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자사 홈페이지와 지하철 전동차 광고 등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관련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광고 문구는 간단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혹하는 내용이다. 첫 구매 시점부터 60일 후(두 번째 복용이 끝난 시점) 30일 이내 감기에 걸렸을 경우 6개월 간 병원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총액 10만원 한도 내에서 감기로 인한 병원 통원비도 지원한다.

해당 광고를 본 소비자들 반응은 엇갈린다. 지하철 3호선의 한 50대 남성 승객은 “경제사정이 어려운 소비자들이 보면 호기심을 가질 만한 광고”라면서도 “이런 광고는 자제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지하철 4호선에서 만난 60대 여성 승객은 “환절기를 맞아 손주에게 보약을 선물하려 했는데 복용한 후 감기에 걸리면 병원비까지 주겠다니 구입해야겠다”며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병원비까지 챙겨주는 업체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칭찬했다.

“제품 광고 아닌 가계비 지원 이벤트일뿐”

광고 문구는 해당 제품을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는 허위과대광고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업체는 광고를 위해 사전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업체는 과대광고를 금하고 있는 식품위생법 기준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 3,4호선의 해당 광고에 ‘식품위생법 8조 2항 기준에 따라 허위과대광고에 적용될 수 있어 본 행사는 감기 예방에 효능이 있다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리며, 고객만족서비스의 일환으로 가계비 지원 행사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식품위생법은 시행규칙 제8조(허위표시, 과대광고, 비방광고 및 과대포장의 범위) 2항을 통해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내용의 표시 및 광고를 금하고 있다. 업체 제품이 감기예방 또는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광고가 아닌 고객만족을 위한 이벤트임을 밝힌 것이 적중한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해당 광고 내용이 문제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식약처 식품정책조정과 관계자는 “해당 광고는 업체제품을 복용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감기에 걸리면 병원비를 지원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과대광고로 볼 수 없다”며 “실질적으로 병원비를 지원하고 있다면 문제 삼기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문의 결과 해당 업체에서는 한 달 평균 약 100만원 정도 소비자들에게 병원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참다한 흑홍삼 관계자는 “우리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고가라서 2,3개월 복용하고 감기에 걸리면 가계비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벤트를 시작하게 됐다”며 “광고 게시 후 과대광고라며 경쟁사들이 경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아 아무 문제없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병원비 지원 이벤트는 당분간 계속 진행할 것”이라며 “이것보다 더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럴거면 의약품ㆍ건강기능식품 왜 만드나?”

법망을 교묘히 피한 광고에 관련 업체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한 건강기능식품업체 관계자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식약처에서 동물실험, 인체적용시험 등 과학적 근거를 평가해 인정받은 기능성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건강기능식품업체 관계자는 “예전엔 제품을 복용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식의 허위 과대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했는데,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니 병원비를 주겠다는 호객까지 등장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법조계에서도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배준익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변호사는 해당 광고와 관련해 “심하게 말하면 콩나물국밥 먹고 감기 걸리면 병원비를 제공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면서 “이런 식의 광고가 문제가 없다면 자본을 투자해 의약품 또는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지 않고 일반식품을 파는 것이 업체 입장에서는 훨씬 좋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 변호사는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광고가 법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 반응도 다르지 않다. 의료계는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에 비해 엄격한 기준이 없는 건강식품 광고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이사는 “참다한 흑홍삼 광고의 경우 법적으로 문제를 삼기 애매하지만 솔직히 소비자에게 홍삼을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며 “건강식품은 의약품, 건강기능식품과 달리 자유롭게 광고를 할 수 있어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보건당국은 이번 기회에 건강식품 광고와 관련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식품에 디스클레이머 도입 놀라워”

식약처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조정훈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은 “법망을 교묘하게 피했지만 허위광고라 판단된다”며 “식약처가 의료를 상술로 이용한 광고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주무부서인 식약처가 과대광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소비자원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의 업체 관계자는 “몇 번 허위과대광고를 해보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수밖에 없다”며 “제품을 복용한 후 암에 걸리면 치료비를 물어주겠다는 광고도 나올 수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광고 내용이 불법은 아니라지만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는 의견이 나온다. 최창희 경성대 외래교수는 “제품 복용 후 감기에 걸리면 병원비를 준다는 광고 내용은 역으로 이 제품을 복용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는 “식품광고에 디스클레이머(disclaimerㆍ금융기관이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첨부하는 공지)를 적용한 기가 막힌 발상”이라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특히 건강취약계층에서 이런 광고를 통해 제품을 선택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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