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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성과 광기는 서로 닮아… 정신증상이 인류 진화의 역사를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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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성과 광기는 서로 닮아… 정신증상이 인류 진화의 역사를 증명

입력
2015.09.2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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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집단에서 얼마나 많이 정신장애가 발견될까? 정신과 의사인 아놀드 루드비히는 1,000여명의 저명인사를 대상으로 10년 간의 추적연구를 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뛰어난 배우 중 17%가 조증을 앓았으며, 작곡가의 10%가 조현병에 이환되어 있었다. 우울증의 경우는 이러한 비율이 더 높아지는데, 시인의 약 77%가 우울장애를 앓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일반 인구의 조울병, 조현병 유병률이 1%, 우울장애 유병률도 10~20%에 불과한 것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천재성을 보인 전문가 집단의 상당수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는데, 천재적 과학자의 9%, 위대한 시인의 20%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저주는 천재 본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일차 친족에서도 상당히 높은 정신장애 유병률과 자살률이 관찰되었는데, 이쯤 되면 천재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는 전쟁을 하기로 했어요…(중략)… 앨리스는 둘 중 한 손만 잡으면 다른 한 명이 삐질까봐 선뜻 악수를 할 수 없었어요.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해보고는 두 손을 한꺼번에 잡았어요.’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라는 쌍둥이 형제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앨리스는 이들을 화해시키려다 이내 지치고 마는데, 천재성과 광기도 트위들덤과 트위들디처럼 마치 상반된 것 같지만, 사실 거울에 비친 것 같이 똑 같은 쌍둥이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설명은, 아름다운 도자기가 나오려면 뜨거운 불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정신장애라는 고통을 겪으며 더욱 강인해진 나머지, 결국 천재적인 업적을 이룬다는 것이다(후천적 면역모델). 일견 그럴 듯 하지만, 왜 어떤 사람은 정신장애를 통해 더욱 강인해지고, 어떤 사람은 점점 피폐해지는지 설명해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진화인류학적 가설이 있다. 과거 우리 조상에게 유리했던 형질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광인, 혹은 천재가 된다는 것이다(게놈지연가설). 이 가설에 따르면, 천재성은 강력한 원초적 정신능력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거칠어서 종종 광기로 변모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설은 천재 집단에 흔한 알코올 의존을 잘 설명하지만, 다른 장애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최근에는 주로 ‘보상이익모델’이라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즉 천재성 혹은 이와 관련된 유전자는 본인과 주변 사람에게 아주 큰 이익을 주기 때문에, 정신장애로 인한 손해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놀랍게도 조현병 환자나 그 친족의 우등생의 비율과 박사학위 소지비율이 일반 인구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독특한 인지능력과 기발한 창의력, 놀라운 감수성, 엄청난 추진력과 같이 바람직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정신장애는 본인의 삶에 적지 않은 손해를 끼치지만, 가까운 친족이나 이웃 그리고 사회 전체에는 커다란 이득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타인에게 제공하는 이득은 진화적으로 선택되기 어렵다고 비판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과거 부족집단에서는 부족구성원 전체가 결국 친족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인은 천재들의 기괴한 행동이나 괴팍한 성격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뛰어난 천재성이라는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서, 결국 정신장애가 발병했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 믿음과는 달리, 사실은 정신장애 자체가 바로 천재성이 꽃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인지도 모른다. 굳이 천재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언어나 공감 능력 같은 인류 보편의 독특한 인지 능력을 얻게 된 진화적 대가가 ‘정신장애’라고 생각하는 인류학자들이 있다. 아직 증거가 충분하지 않지만, 이러한 가설은 천재성과 광기가 비례하는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천재적인 위인을 추앙하고 본받는다. 심지어 그들의 기벽마저도 천재성을 더욱 빛내주는 장식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천재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인간성의 본질’은 천재적 업적이 아니라, ‘광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아쉽게도 천재성을 보이지 못하는 진짜 ‘광인’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스러운 정신증상을 통해서, 그 동안 인류가 걸어 온 힘겨웠던 진화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잉여인간, 즉 정신장애인들이, 알고 보면 인류문명을 건설한 보편적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 의ㆍ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 의ㆍ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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