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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칼럼] 암송이 창의를 부른다

입력
2015.09.2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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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에 매우 열악한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 가면 고전을 송두리째 외우는 게 전부였다. 교재는 시인 베르길리우스, 소설가 아풀레이우스, 희극작가 테렌티우스 등이 남긴 라틴 고전작품들뿐이었다. 그 탓에 그는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배우지 못했고, 당시 학자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그리스어는 죽을 때까지도 익히지 못했다. 고대의 저명한 신학자들 가운데 그리스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뿐이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처럼 열악한 교육을 받은 탓에 오히려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가 통째로 암기한 작품들은 구어체로 쓰인 서사시와 산문이었는데 하나같이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문장은 더없이 훌륭했다. 훗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을 연 단테도 그를 흠모하여 ‘신곡’에서 자기를 인도하는 스승으로 등장시킨 이 시인은 “결코 실수를 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칭찬을 받지 못할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비롯한 라틴 고전문학은 마치 술통에 채워진 첫 포도주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에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을 향기’를 남겼다.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간결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한 문장들을 철저히 외우는 교육을 받은 이 소년은 나중에 청중과 독자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불러일으켜 설득하는 구어체 언어의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가 평생 동안 이교도들과의 논쟁에서 상대를 무찌르거나, 수많은 저술과 설교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더할 수 없는 무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낭송과 암송의 문화가 사라져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시를, 그리고 연설문을 비롯한 산문들을 낭송하고 암송하자는 권유가 무척 생뚱맞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의 시들을 암송하며 이성적 인간으로 향하는 길을 닦았고, 우리 조상들도 어릴 때부터 천자문에서 시작하여 한시(漢詩)와 사서삼경을 낭송 또는 암송하며 군자의 길을 갔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옛 것이라고 모두 구닥다리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낭송과 암송이 창의성의 산실이다. 뛰어난 시와 탁월한 산문들을 낭송하고 암송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바둑기사들이 명인들의 대국을 복기할 때, 동양화를 배우는 사람이 스승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작곡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걸작들을 필사할 때(이 일에는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J. S. 바흐가 전범이다)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뇌신경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반복해서 할 때 뇌는 대상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의 패턴’을 모방한다. 그럼으로써 언어를 배우고 학문을 익히고 예술을 창조하게 한다. 우리의 뇌가 어떤 식으로든 이 같은 정신의 패턴들을 모방하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언어와 학문과 예술을 익히고 창조할 수 있는 고차적 의식, 곧 고등 정신기능이 발달하지 못한다.

창의성은 단지 우리가 가진 고등정신기능의 일종이다. 그것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별난 능력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그 어떤 창의적 이론도, 발명품도, 예술도 무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만일 그런 유별난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창의성이란 기존의 것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게끔 새롭게 하는 능력이다.

지난 3일 서울대에서 개최된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세미나를 비롯해 근래에 곳곳에서 유사한 세미나와 포럼들이 열리고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앞으로 인간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정서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당신이 가령 출퇴근 시간에 아름다운 시와 뛰어난 산문들을 조용히 낭송하거나 암송하는 낭만적인 일을 통해 그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다행스럽고도 멋진 일이 아닌가. 아이들에게도 필히 권해야 할 일인데, 때마침 가을이다. 당장 시작해보자!

김용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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