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 기성회비 반환청구 등 1994년 이후 '7대 6' 사건 13건
퇴임한 민일영ㆍ양창수 前 대법관, 팽팽한 상황서 매번 보수 표 선택
4개 사건에 다수 의견 이름 올려 "대법, 다양성 부족" 비판에 일조
우리 대법원에도 앤서니 케네디 미국 연방대법관 같은 인물이 있을까? 올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5대4’로 동성 결혼 합헌 판결을 내린 후 케네디 대법관은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보수성향인데도, 동성 결혼 허용 쪽에 표를 던졌다. 늘 소수자 인권에 앞장섰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같은 진보 대법관의 ‘당연한 한 표’보다, 오히려 케네디의 한 표가 결정적이었고 그래서 더 주목 받았다.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우리 대법원은 ‘1표 차 판결’이 매우 드문 편이다. 대법관 13명의 1표차 판결은 의견이 7대6으로 갈리는 경우다. 지난 15일 대법원의 이혼 유책주의(有責主義ㆍ혼인 파탄 책임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는 판례) 유지 판결은, 국립대 기성회비 반환 청구 사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나온 ‘7대6’판결이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이 같은 1표차 판결은 모두 13건으로 대부분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이었다. 이들 판결은 대법관 한 명 한 명이 모두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것으로, 그 한 표가 사회적 흐름을 바꾸거나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면 케네디 대법관처럼 이들 사건의 최종 방향을 정한 대법관은 누구였을까.
본보가 분석한 결과, 16일 퇴임한 민일영 전 대법관은 직전 이혼 판결에서 소수의견에 이름을 올린 것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4개(쟁점 별로 다수ㆍ소수의견이 혼재됐던 PD수첩 사건은 제외)의 ‘7대6’사건에서 모두 다수 의견에 동의했다. 지난 해 퇴임한 양창수 전 대법관 또한 2009년부터 총 4건의 1표 차 판결에서 다수 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그 외 현직 대법관 중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1표 차 사건에서 늘 다수의견에 이름을 올린 대법관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일영 양창수 전 대법관이 케네디 대법관과 같은 일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의견이 팽팽하거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항상 보수적 결정에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성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는 현재 대법원의 모습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분석되고 있다.
1표차 판결에서 민 전 대법관이 다수의견에 이름을 올린 ‘국립대학 기성회비 반환청구 사건’은 “기성회비를 학생들에게 돌려줄 필요 없다”고 파기환송 됐고, ‘강원랜드 카지노 이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은 “베팅 한도액을 넘어선 도박을 묵인했더라도 고객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며 파기 환송됐다. 또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은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공무원법 위반”이라는 판단에 가세했다. 다만 이념적 잣대를 대기 어려운 ‘양도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사건’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땅을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거래한 경우에도 양도소득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양창수 전 대법관은 강원랜드 사건, 전교조 사건, 양도소득세 사건 외에 삼성의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을 일으킨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다수 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두 전직 대법관이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이런 사건들에서 한번이라도 소수의 편에 섰더라면, 그 쪽이 다수의견이 되어 우리 사회를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을 수 있다. 관행상 소수의견을 내지 않고, 의견이 ‘6대6’으로 갈린 상황에서만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대법원장이 이런 판례들을 이끌어왔다고 볼 여지도 크다. 하지만 대법원장과 늘 함께 움직인 두 대법관의 역할이 그에 못지 않았던 셈이다. 결국 1표차 판결에서 진보ㆍ보수 이념을 넘나든 한국의 앤서니 대법관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대법원장과, 그 반대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결론을 도출한다. 우리 사법부는 과거 ‘독수리 5형제(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소수의견을 많이 내던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전 대법관)’ 이후 그런 균형이 깨진 상태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을 13명으로 한 것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 나누기 위한 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각자의 정의나 법의식에 따라 일단 개진한 뒤 조정해 나가기 위한 것인데 일부 대법관들이 거의 예외 없이 다수의 편에만 서는 것은 문제”라며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각자에게 독립된 최고의 사법기관이란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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