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수 450명 인터넷 카페서 법률정보 교환 넘어 범행 합리화
수사ㆍ처벌 피하는 방법에 골몰
“초범이신가요? 구속은 절대 안 나옵니다. 변호사 선임하고 피해자 있다면 빨리 합의 보세요.” “끽해야 벌금형이니까 너무 겁먹지 마시고 기소유예 노려서 서류 준비하세요.”
18일 국내 한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대화 내용이다. 이 카페는 카메라를 이용해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는, 이른바 ‘몰래카메라(몰카)’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모여 법률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 범행을 구체적으로 모의하지 않아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파렴치한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년 전 개설된 카페는 1940~96년에 출생한 남성만 가입할 수 있는데 9월 현재 회원수는 약 450명이다. 자신의 범행 내용과 날짜, 지역을 상세히 밝혀야 회원등급이 올라가게 돼 사실상 성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카페에서 오가는 정보는 대개 이런 식이다. 한 회원이 몰카로 적발된 실제 사례를 공개하고 재판 받을 법원과 판사 이름을 제시하면 다른 회원들은 경험과 분석을 곁들여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의견을 나눈다. 범죄 ‘선배’들은 변호사 선임이나 피해자와의 합의 등 세부적인 법적 절차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법적 처벌을 가정해 피고인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피해가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에스컬레이터에서 여성을 촬영하다 단속된 한 회원이 증거를 없애려다 경찰에 휴대폰을 압수당했다며 “휴대폰 데이터를 복원하면 최근 한달 간 찍은 40여장의 사진이 다 드러날 텐데 걱정”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해당 건은 남겨두고 나머지 사진만 지웠다면 휴대폰 복원도 안하고 기소유예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그럴듯한 변론이 뒤따랐다. 이를 통해 몰카 범죄의 내용과 대응이 서로 공유되면서 사실상 몰카 정보가 유통되고 성범죄를 조장하는 결과도 초래된다.
카페 회원들은 또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등록하는 처분이 범죄 수위에 비해 가혹하다면서 “강도 살인만큼이나 손가락질 받고 대역죄인으로 몰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해당 카페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련 내용들이 게시돼 네티즌의 비난이 폭증하자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런 성범죄 가해자들을 겨냥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와 법률사무소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 법률사무소는 “순간의 실수와 오해로 누구나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변호 성공사례를 홍보한다. 몰카를 찍다 현장에서 적발된 재범자는 보통 실형을 면하기가 어려운데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게 해줬다며, 죄가 있어도 돈을 내면 가벼운 벌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같은 범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무리를 지을 경우 동질성을 무기로 범죄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집단 망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온라인 카페 자체가 범죄를 도발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법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가해자 스스로 잘못을 덮으려는 것도 모자라 돈벌이를 위해 이들에 편승하는 세력까지 생기는 현상은 윤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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