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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생활보다 농경사회가 인간의 폭력성을 키웠다

입력
2015.09.1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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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어디서 왔나 야마기와 주이치 지음, 한승동 옮김, 곰출판 발행
폭력은 어디서 왔나 야마기와 주이치 지음, 한승동 옮김, 곰출판 발행

영장류 연구는 인지과학, 신경과학, 뇌과학 연구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분야다. ‘폭력은 어디서 왔는가’의 저자 야마기와 주이치 교토대 교수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야생 일본원숭이와 침팬지, 고릴라의 사회적 행동 양태를 추적해온 동물행태학자이며 영장류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의 행동양식과 습성을 통해 인간 폭력의 기원을 추적한다. 저자는 우선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커다란 편견을 지적하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걸작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한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도구를 갖지 못했던 인류의 조상이 우주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수수께끼의 물체 모노리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죽은 동물의 뼈를 무기로 삼아서 다른 무리를 공격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1962년에 발표된 극작가 로버트 아드레이의 ‘아프리카 창세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으로, 그 원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처음 발견한 해부학자 겸 고고학자 레이먼드 다트라고 할 수 있다. 다트는 다른 유인원처럼 과일을 주식으로 하던 초기 인류가 육식을 시작하면서 무기를 사용하면서 폭력성을 띠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다양한 무리의 영장류 연구를 바탕으로 이를 반박하며, 인간이 수렵생활을 통해 공격성을 키워왔다는 학계 주장을 비판한다. 영장류 내에서 먹이와 생식자원을 둘러싼 다툼이 어떻게 폭력을 유발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해소해왔는지를 밝히면서, 만약 갈등과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했다면 현재의 영장류는 모두 도태되어 멸종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다만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의 폭력성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침팬지 특히 수컷의 싸움이 개체의 이익과 욕망에 휘둘려 싸움을 일으키는데 비해, 인간의 싸움은 늘 (자신이 속한) 무리에게 봉사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이 수렵생활보다는 오히려 언어와 가족, 그리고 농경과 문명으로 만들어진 인간 고유의 집단 즉 ‘상상의 공동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똑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씌어진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2장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 핑커는 리처드 랭엄의 영장류 연구를 참고하면서도 다양한 인간 집단, 이를테면 수렵 채집민과 농경민, 그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 형태를 실증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폭력으로 인한 사상자 비율을 도출한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폭력성이 점차 줄어들었음을 논증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에 기댄 듯한 야마기와 주이치의 이 책은 영장류 연구서로서는 더없이 훌륭하지만 동물행태학적 연구만으로 인간의 폭력성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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