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동선 파악에 실패… 관내서 활보
'치정→강도' 수사방향 전환도 늦어
‘트렁크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일곤(48)이 검거되면서 경찰의 미숙한 수사 과정이 입길에 올랐다.
18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경찰은 김씨를 검거한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의 범행 후 동선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피해자 주모(35ㆍ여)씨의 시신이 발견된 11일 이후 8일간의 행적을 김씨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전날 브리핑에서 “피의자가 강원 양양, 부산, 울산 등으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김씨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체포 직전까지 경찰이 확인한 그의 동선은 11일 방화 직후부터 같은 날 동대문구에서 택시를 타고 사라진 오후 9시10분쯤까지 약 7시간에 불과했다. 때문에 도피 중 김씨의 추가 범행 가능성 등 후속 수사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경찰은 또 58명에 달하는 대규모 수사본부를 차려 놓고도 반경 3㎞ 안에서 활보하던 김씨를 인지하지 못했다. 김씨는 수사본부에서 차량으로 불과 10분 거리인 동물병원을 검거 당일 오전에만 세 차례 방문했지만 수사팀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척에서 살인 피의자가 흉기 난동을 부리던 시점에 경찰은 한 달 전 그가 방문했던 분당선 죽전역 인근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찾고 있었다.
경찰의 ‘헛발질’은 수사본부가 꾸려지기 전부터 예고됐다. 수사팀은 당초 ‘치정 또는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방향을 잡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3일 뒤 ‘강도살인’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마저도 14일까지는 “피해자의 직업이 공인중개사인만큼 통화량이 많아 휴대폰 통화내역을 분석하지 못했다”며 확신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 경찰 관계자는 “치정살인과 강도살인은 탐문수사 대상 선정 등에서 수사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며 “수사방향을 잡는데 사흘이나 허비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지체 없이 경찰에 신고 한 시민들과 김씨의 인상착의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던 지구대원들이 아니었다면 붙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초에 전과 22범인 김씨를 우범자 관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등 경찰의 부실한 관리가 범죄를 키웠다는 의견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김씨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라는 특성상 장시간 잠적이 어렵기 때문에 큰 틀에서 ‘고정형 수배범’으로 분류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