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대박을 친 영화의 흥행 비결,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지역감정의 추이, 주식시장의 동향과 투자 전략, 원정경기를 많이 하는 프로야구팀들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경기 일정 짜기, 메르스 같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골든타임,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조직 구조…. 물리학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답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 물정의 물리학’은 그런 통념을 깬다. 복잡계물리학의 이론 틀 안에서 사회, 경제,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는 연구를 해온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가 쓴 이 책에서 위에 언급한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물리학자‘도’ 세상을 본다”며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지금, 여기‘의 세상물정 이야기”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과자 허니버터칩의 성공 비결, 한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나던 용이 하수구로 빠지게 된 사연, 명절 연휴 고속도로 교통체증의 원인,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 주식 투자에 성공하는 장기 보유 전략, 인간 뇌의 진화, 살 오른 생선을 고르기 위한 물고기의 체질량지수 계산법 등등 별별 화제를 알기 쉽게 풀이한다.
최근의 메르스 사태를 보자. 통계물리학으로 보면 질병 발생 초기 감염자 수는 시간에 대해 지수함수의 꼴로 증가하는데, 이게 엄청나게 빨리 증가하는 함수다. 초기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난을 만나 공황에 빠진 사람들의 탈출 속도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물리학자 헬빙의 2000년 논문은 투명한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 메르스 대응에서 한국의 방역당국은 초기 개입과 정보 공개를 모두 놓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 셈이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나타나는 지역감정은 득표율의 거리상관함수로, 정치적 결정 같은 중대한 문제에서 집단지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은 물리학 페르마의 법칙으로, 프로야구단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경기 일정표는 몬테카를로 방법이라는 물리학 계산법으로 찾아낼 수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력은 연결중심성이라는 개념으로 판단할 수 있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누가 맞을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한국인의 성씨 분포를 분석해 김씨ㆍ이씨ㆍ박씨가 돌에 맞을 확률 44.8%를 뽑아내고 족보를 활용해 조선 초기 성씨 분포를 알아내기도 한다.
물리현상이 아닌 세상물정의 물리학이다 보니, 한국 사회나 정치에 대한 비판도 심심찮게 들어 있다. 예컨대 개미집단이 이동할 때 따라가기와 돌아다니기를 적절하게 섞어서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행동 패턴 이야기가 그렇다. 페르마의 법칙으로 알려진 최소 시간의 법칙으로 이를 설명하면서 꼬집기를 “정치인들이 많이 보여주는 ‘내 길이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개미도 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 꼭지에는 ‘개미는 알고 정치인은 모르는 비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한마디로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계물리학의 세계를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 같은 건 전혀 나오지 않고, 대신 통계와 사고실험을 활용한 그래프가 계속 등장하지만, 어려운 내용은 아니므로 긴장할 필요는 없다. 각 꼭지 분량이 길지 않아 짬짬이 아무 데나 펼쳐서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기도 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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