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호 발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책 정보 주고받는 플랫폼 변신 계획
"출판 담론 만드는 전진기지 될 것"

한기호(57)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 20일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00호를 낸다. 대중성이나 상업성과는 한참 떨어진 전문지가 1999년 2월 창간 이후 단 한 번 결간 없이 16년간 나왔다는 건 국내 출판업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한 소장은 400호 발간을 앞두고 지난 8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출판 업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산하는 팩트(사실)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출판업 종사자들의 글을 많이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분야에도 이런 책은 없다”는 한 소장의 말에선 진심을 담아 잡지를 지켜온 자부심이 묻어났다.
‘기획회의’의 창간 당시 이름은 ‘송인소식’이었다. 그는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한 뒤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은 책 도매유통사 송인서적을 위탁 경영하던 시절 500만원을 투자 받아 첫 호를 만들었다. “당시 외환위기로 도매상들은 책을 팔아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는 걸 넋을 잃고 바라봐야 했습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죠. 출판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하나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책 하나 내는 게 학교 하나 세우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무가지였던 ‘송인소식’은 2004년 유료 잡지 ‘기획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열한 살을 더 먹었다. 상업성이 짙은 잡지도 살아남기 힘든 판국에 ‘기획회의’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한 소장이 거의 “몸으로 때우다시피” 해서 적자를 메워왔기 때문이다. 출판평론가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전국 곳곳에서 강연하며 번 돈을 쏟아 부었다. “매일 원고를 마감하면서 한 달에 20회 이상 강연 다닌 적도 있다”는 그는 “(잡지를 창간할 때)1년만 더 고뇌했다면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한 소장은 출판평론가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경영과 편집, 영업을 두루 겪은 ‘현장파’다. 창간 초기엔 한 소장과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도맡아 ‘기획회의’ 원고를 썼다. 오랫동안 ‘1인 잡지’ 형식으로 출간되던 이 책은 지난해 초 15주년 기념호가 나온 뒤부터 편집위원제도를 도입해 5명의 편집위원이 논의해서 만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내 잡지가 아닌 느낌이 듭니다. 내년 신년호부터는 편집위원들의 생각이 담긴 혁신호를 내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혼자 하기보단 뜻을 함께하는 후배들과 함께하는 게 중요한 시점입니다. 출판에 대한 담론을 만드는 전진기지가 돼야죠.”
한 소장은 출판계에서 유명한 다독가다. 한 포털사이트에 글을 연재할 땐 1주일에 20권씩 읽기도 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자고 일하다 통풍까지 걸렸던” 시절이었다. 그가 늘 청바지를 고수하는 것은 “다림질할 시간을 줄여” 책을 읽고 쓰기 위해서다. 밤낮 없이 업무에 시달리면 스트레스가 심할 법도 하지만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해서인지 스트레스가 쌓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특집호로 냈던 300호 때와 달리 400호는 단출하다. ‘출판과 빅데이터’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와 ‘기획회의 400호의 의미와 한국 출판’이라는 좌담을 싣는다. 400호를 내며 그가 느끼는 한국 출판계의 중요한 이슈는 뭘까. 한 소장은 “출판계에도 이제 플랫폼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업계 종사자나 소비자들이 ‘기획회의’라는 플랫폼을 통해 책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도록 하겠다는 거다.
‘기획회의’를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신력과 공공성 그리고 연결성이다. “‘기획회의’가 평소 많이 다루지 않았던 아동ㆍ청소년 도서와 실용서까지 책의 모든 분야에 대해,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서평가들이 글을 올리도록 할 겁니다. 편집자와 저자가 이젠 독자와 직접 연결하지 않고선 살아가기 힘든 시대니 소통에도 힘을 써야죠. 지금은 어느 때보다 지식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디드로(‘백과사전’을 편찬해 특권층만 누리던 지식을 일반 시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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