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던 여름이 끝났다. 마흔다섯 해 여름을 통틀어 가장 공포스럽던 여름이었다. 시작은 메르스였다. 메르스가 창궐한 후 강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주 수입이던 강연이 끊기니 밥벌이조차 하지 못했다. 은행 빚이 늘어나는 만큼, 나는 점점 가라앉아 갔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도 균형을 잃었다. 대상포진에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잠 때문에 망할 거라는 말을 평생토록 일관되게 들어온 나에게 불면증이라니.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격렬하게 한 일은 걱정이었다. 이달 치 생활비에 대한 걱정, 올려줘야 할 전세금에 대한 걱정, 전세 재계약 만기 후에 대한 걱정, 그 너머 노후에 대한 걱정…. 걱정의 세계는 깊고도 놀라웠다. 걱정은 걱정끼리 만나 공포를 낳으며 무한증식해 갔다. 마침내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혼자 짊어졌다고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만 혼자이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가난했다. 나만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 같았다.
걱정의 그물에 갇혀 숨이 막힐 때면 산에 올랐다. 유해진도 아닌 나를 북한산만은 알아줬다. 땀을 쏟으며 걸을 때만큼은 광활한 걱정의 세계도 잠시나마 줄어들었다. 한 주에 서너 번씩 산에 올랐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걱정에 지친 밤이면 책을 읽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 휴가에 챙겨갔다는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읽었고, ‘작가들의 작가’라는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도 읽었다. 독일의 소도시를 걷는 허수경 시인의 글과 서경식씨가 들려주는 시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열대야에 몸이 식지 않는 밤이면 극장으로 두 시간의 피서를 갔다. 디스토피아에서 탈출하고자 질주하는 여자들의 영화 ‘매드맥스’를 보고, 아들을 잃고 삶의 의미도 잃은 아버지의 노래 ‘러덜리스’를 듣고, 은행 돈을 훔쳐 몰락을 향해 폭주하는 여자의 ‘종이달’을 봤다. 소설과 영화 속 세계도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들 외로워 보였고, 다들 고단한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라 전체가 재난 영화의 촬영 현장이라 할 정도로 모두 생존 자체가 위태로웠다. 아이는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포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사회 안에 나는 살고 있었다.
여름의 끝 무렵, 국가에서 무료로 해주는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스트레스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명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스트레스 저항도가 뛰어나고, 피로도는 매우 낮으며, 자율신경 조절 능력이 아주 좋은 상태란다. 지금껏 우울증이라고 믿고 있었던 건 착각이었나. 그 요상한 스트레스 검사 결과가 나를 안심시킨 것인지 나는 조금씩 걱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작 그 정도의 물질적 궁핍에 무너지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 동안 나는 가난하다 믿었지만 한 번도 절망적으로 가난하지 않았고, 외롭다 했지만 절절하게 고독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세금을 올려줄 때 내게는 깨뜨릴 청약저축이나마 있었고, 모자라는 돈을 선뜻 빌려준 선배도 있었다. 운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다. 처음으로 목구멍에 풀칠하기 직전까지 몰려보니 지레 겁이 났던 것에 불과했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이 길에서 자족하는 한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걸까. 욕심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다가도 복병을 만나 고꾸라질 수 있는 게 인생이란 걸 잊고 있었다.
‘자가진단 우울증’에서 벗어난 기념으로 뭘 할까 궁리하며 신문을 읽던 나는 다시 걱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의도 때문이었다. 존재 자체가 온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여의도라는 진흙탕. 그 안에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의원이 있다. 그런 의원에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수입의 1%를 기부하기로 했다. 숭고한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한 이기심 때문이다. 내 일상의 안전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에.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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