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미생’조련사로 변신한 테리우스
“패배의식 벗고 발전하는 모습에 보람
때이른 인기몰이에 선수들 겉멋들까 걱정”
“요즘 제일 큰 걱정은 카메라죠. 젊은 선수들이다 보니 미디어 노출이 잦아질수록 들뜨거나 겉멋들기 딱 좋아서…”
KBS 예능 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에서 ‘축구 미생’들을 조련 중인 안정환(39) 감독의 신경이 요즘 부쩍 날카로워졌다. K리그 클래식 성남FC와 연습경기가 열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청춘FC 선수들이 때이른 인기몰이에 초심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프로 데뷔 때부터 ‘테리우스’란 별명을 얻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그였기에 이 같은 걱정은 당연했다. 방송이 거듭되며 청춘FC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선수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란 너무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성남과의 연습경기에는 평일 오후 경기임에도 청춘FC의 도전을 지켜보기 위해 8,000여 명의 관중이 탄천종합운동장을 찾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그 속에서 청춘FC 선수들은 비주전급 멤버들로 구성된 성남 선수들보다 더 큰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안 감독은 “현재로선 선수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도록 다잡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취재진에게도 선수들의 도전 과정에 대한 아낌없는 격려를 부탁하면서도 개별 인터뷰는 자제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약 3개월간 성장해 온 선수들의 모습에 내심 뿌듯한 모습이다. 안 감독은 “국내 프로팀과 연습 경기를 해가며 선수들 기량이 부쩍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청춘FC)선수들 중에는 프로 선수들과 붙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선수들도 많았지만 이제 프로팀을 상대로 최소 45분 이상 자신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실제로 청춘FC는 지난 1일 상암 월드컵보조경기장에 열린 K리그 챌린지 서울이랜드전에 이어, 이날 성남전에서도 프로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성장세는 분명하지만 청춘FC의 모든 멤버가 프로에 갈 수는 없다는 건 안 감독과 시청자들은 물론 선수 본인들도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안 감독은 “선수들은 지금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을 맛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커다란 실패 후 얻은 재도전의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거란 이유에서다.
그는 청춘FC 감독을 괜히 맡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여기 저기서 실패를 맛본 선수들을 모아 조련하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줘야 했고, 신경 써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앞서 제의가 있었던 프로팀이나 국가대표팀의 ‘한 자리’가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잠시였다. 어느 순간 본인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안 감독은 “당연히 시스템이 갖춰진 팀을 맡았으면 수월했을 것”이라면서도 “백지 상태였던 이들이 패배의식을 벗고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면 큰 보람을 느꼈다”며 지난 3개월을 돌아봤다. 웬만한 K리그 경기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찾은 관중석을 응시하던 그는 “시청자와 관중들에게 우리 선수들의 도전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집에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며 “열정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며 각자의 인생에서도 끝까지 도전하는 삶을 추구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성남=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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