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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량 수류탄

입력
2015.09.1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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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이 병사들을 이끌고 우리의 국회 격인 ‘500인회’에 들이닥쳤다. 프랑스혁명 이후 권력을 쥔 총재 5명 중 한 명인 시에예스가 다른 총재들을 축출하기 위해 나폴레옹을 앞세워 무력으로 의회를 겁박한 것이다. 이날 ‘브뤼메르 쿠데타’의 성공으로 나폴레옹은 훗날 황제가 되지만 쿠데타 당일 나폴레옹은 수많은 의원들에 둘러싸여 위협을 받는 봉변을 당했다. 이때 그를 호위한 병사들이 척탄병(擲彈兵)이다.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은 쿠데타 성공후 이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 17세기 중반 유럽에서 질그릇에 화약과 쇠붙이를 담아 불을 붙여 던지는 수류탄이 고안됐다. 이 크고 무거운 신무기를 멀리 던져 살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함에 따라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병사들이 모인 척탄병 부대가 생겨났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수류탄이 소형화하고 소총과 야포의 위력과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자 척탄병 부대는 사라졌다. 대신 2차 대전 당시 독일 국민척탄병(Volksgrenadier)처럼 척탄병은 정예 부대를 상징하는 이름으로만 남았다.

▦ 우리 눈에 익숙한 수류탄은 영국 밀즈사가 1915년에 제작한 MK1 모델이다. 겉면에 홈이 파인 모양 때문에 ‘파인애플 수류탄’이라고도 불리는데 2차 대전부터 한국전, 베트남전 때까지 사용됐다. 척탄병들은 폭발 시 파편이 퍼지는 모습을 보고 수류탄을 ‘석류탄’이라고 불렀다. 수류탄의 영어 표기인 ‘grenade’는 석류를 뜻하는 ‘pomegranate’에서 뻗어 나왔고 수류탄의 ‘류’(榴)는 석류나무를 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상력 높은 수류탄에서 달콤한 과일을 연상하다니 아이러니다.

▦ 대구 육군 신병훈련장에서 정예병이 되려던 교관과 훈련병이 불량 수류탄 폭발로 숨지거나 중상을 입었다. 문제의 수류탄이 1년 전 포항 해병대 훈련장에서 폭발 사고를 일으켜 훈련병을 숨지게 한 불량 수류탄과 생산연도, 생산라인이 같다니 어이가 없다. 군 당국이 지난해 불량 수류탄을 제대로 걸러냈다면 더 이상의 억울한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될 듯하자 군 당국은 뒤늦게 동일 수류탄 5만4,000여 발을 회수하겠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군의 일상적인 뒷북 대처가 개탄스럽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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