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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 고분서 숨소리 들리는 듯… 옛 문화왕국의 부활 꿈꾼다

입력
2015.09.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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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에 왕과 귀족들 무덤 수백개…한 무덤서 36명 순장자 발견되기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추진, 박물관엔 묘 내부 원형 그대로 재현

악기 제작과정 체험 프로그램 운영…伊 음악도시 크레모나와 교류 협력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대가야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보이는 고분들이 경북 고령군 주산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대가야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보이는 고분들이 경북 고령군 주산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딸기의 고장 경북 고령군은 고대국가 후기가야연맹체 대가야의 수도가 있던 곳이다. 우리나라 3대 악성(신라의 우륵, 고구려의 왕산악, 조선의 박연)이자 가야금의 시조인 우륵을 배출했고, 찬란한 철기문화를 꽃피운 역사의 고장이다. 우륵은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고 12현 가야금과 12개월을 상징하는 가야 12곡을 지었고, 대가야 쇠퇴기에 신라로 망명해 가야금을 전수, 악성으로 추앙 받고 있다.

한반도 맹주를 꿈꾸던 대가야는 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와는 달리 끝까지 저항했다. 저항의 대가는 썼다. 신라는 대가야의 흔적을 풀 뿌리 하나 남겨두지 않고 철저히 짓밟았다. 서기 562년의 일이다. 지금도 고령군에서 대가야 도읍지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은 거의 없다. 일부 고분군과 기와조각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대가야가 1,500년만인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말끔히 단장한 고분군은 무덤이 아니라 거대한 노천박물관이요, 아름다운 공원으로 거듭 났다. 대가야박물관은 순장풍습을 재현하고 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토기와 철기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 곳에 발을 들이면 당시 대가야인들의 생활상은 물론 주군과 함께 생매장당한 처자나 노비들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듯하다.

고령군청 서쪽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은 21세기 고령과 6세기 대가야의 대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대가야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보이는 수백개의 고분군이 고령의 진산인 주산(主山ㆍ해발 310m)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경주의 고분들이 도심과 산자락 등에 클러스터처럼 모여 있는 것과 달리 이채롭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장쾌한 풍경이 압권이다. 거대한 낙타가 능선을 줄지어 걷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고령군은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잘 나타내는 지산동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 중이다. 이미 잠정목록에 올랐고, 2017년 정식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잊혀진 왕국은 21세기 화려한 부활을 한 데 이어 세계를 놀라게 할 채비를 마쳤다.

고분은 대가야가 본격적으로 융성하기 시작한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까지의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국내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인 지산동 44, 45호분을 비롯해 크고 작은 무덤이 700개를 넘는다. 특히 44호분에서는 36명의 순장자가 발견됐다. 대가야 특유의 토기와 철기, 금동관, 금귀고리 등 화려한 장신구들이 발견됐다. 주산 정상부에 봉분 지름 20m가 넘는 대형고분군이 버티고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점점 산꼭대기에 능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산이 높지 않고 산세가 순해 주말 가족나들이 코스로도 그만이다.

주산 끝자락에는 대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가야박물관이 기다리고 있다. 박물관은 주산 기슭에 대가야 왕릉전시관과 대가야 역사관이,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2.3㎞ 가량 거리에 있는 우륵박물관으로 구성돼 있다.

지하1층, 지상2층의 대가야역사관에서는 대가야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태동기부터 성장기, 융성기, 멸망 후 고령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역사관에서 만난 김영희(42ㆍ대구 수성구 지산동)씨는 “대가야는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작은 왕국으로 생각했었는데 지산동 고분군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놀랐다”면서 “화려했던 역사와 찬란했던 문화를 기억에 담아두고 간다”고 말했다.

경북 고령군과 문화·경제 교류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탈리아 크레모나시 관계자들이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을 찾아 소장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가야금의 도시 고령군은 바이올린의 도시 크레모나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고령=최홍국 기자
경북 고령군과 문화·경제 교류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탈리아 크레모나시 관계자들이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을 찾아 소장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가야금의 도시 고령군은 바이올린의 도시 크레모나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고령=최홍국 기자

역사관 옆 돔형 건물은 대가야 왕릉전시관이다. 직경 37m, 높이 16m 규모의 초대형 돔 형식 구조다. 지산동 고분군 44호의 내부를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당시 고분 축조 방식과 순장자들의 모습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꽃다운 처녀부터 노인, 시녀, 호위무사 등 다양한 신분의 순장자들이 보인다. 내세를 위해 산 사람을 생매장했다는 설명을 접하면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일부 시신에서는 창에 찔려 생긴 것처럼 보이는 구멍도 확인됐다. 순장을 거부하면 죽여서라도 묻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학교 체험학습 차원에서 이곳을 찾은 홍예선(16ㆍ경남예술고 1)양은 “대가야 역사에 대해서 잘 몰랐고 순장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었다”면서 “순장 왕릉을 보면서 대가야 문화를 많이 배웠다”고 관람소감을 밝혔다.

순장풍습뿐 아니라 왕릉전시관에서는 당시 토기와 철기문화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토기는 부드러운 곡선미를, 장신구는 정밀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는 화려함을,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갑옷과 투구에서는 무사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야광조개국자는 당시 류큐왕국(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에서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이때부터 외국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우륵박물관에선 악성 우륵과 가야금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가야의 혼을 지킨 우륵, 민족의 악기인 가야금, 우륵의 후예들 등의 주제로 꾸며졌다. 가야금 열두 줄은 1년 열두 달을 상징한다. 가야금의 상판은 둥글고 아래쪽이 편평한 것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전문 장인이 운영하는 우륵국악기연구원에서는 가야금의 제작 과정도 체험할 수 있다. 우륵은 대가야가 멸망하기에 앞서 신라에 망명, 신라 음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대가야의 가야금은 세계 음악도시 이탈리아 크레모나시와의 자매결연을 맺어주는 가교역할도 했다. 크레모나시는 바이올린 제작의 거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나고 활동한 곳이다. 동서양 대표 현악기 가야금과 바이올린을 매개로 두 도시는 ‘동·서양 문화·경제교류 MOU’를 체결했다. 지난 16일에는 크레모나시 앙상블이 이날 개관한 대가야 문화누리관에서 바이올린-가야금 협연을 가졌다.

지안루카 갈림베르티 크레모나시장은 “한국 방문은 처음으로, 대가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령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지산동 고분군과 대가야 박물관 등 고대 문화가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고령군은 뒤늦게 기지개를 펴고 있는 대가야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역사적 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사업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대가야 문화누리 건립,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 대가야 농촌문화·체험특구 조성 등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사업이 이미 현실화했고, 구체적인 성과도 거두고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고령 대가야 체험축제는 매년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문화관광 축제로 자리매김 했다. 대가야 유물 발굴 체험, 순장문화 체험, 가야금제작 체험 등 관광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 펼쳐진다. 고령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배경으로 관광사업 개발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대가야의 우수한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계속 할 것”이라면서 “대가야 고도 고령을 통해 ‘문화왕국’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최홍국기자 hk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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