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대변 위해 통진당 활동하다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선출 못돼
"역사는 권력자 아닌 민중이 만들어
20년 인권운동 계속 이어갈 것"
“통진당 경력이 국가인권위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권의 기본 원칙은 사상ㆍ이념과 관계 없이 차별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인권을 이렇게 버려도 되는지 걱정입니다. 비겁하고 비열한 두 정당은 아무런 사과도 없습니다.”
박김영희(5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의 말투는 담담했다. 지난 14일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옛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력이 국가인권위 비상임 인권위원 선출에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분노와 안타까움이 뒤섞인 듯했다. “세상의 차별에 맞서 싸워온 20년 경력은 제쳐두고 단 6개월 통진당 경력만 놓고 국가인권위에 부적합한 인물로 낙인 찍다니 이야말로 비인권적인 처사가 아닙니까.”
박김 대표의 본업은 정치가 아닌 사회운동이다. 1990년대 후반 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후 줄곧 한 우물만 파왔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건 장애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해달라는 주위의 바람 때문이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수시로 국회를 드나들면서 “장애인이 직접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도 이유였다.
그래서 2008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정당을 통해 국회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비례대표뿐이었어요. 여당이 장애인에게 관심이 있나요. 우리를 안아준 건 진보정당이었고 투쟁 현장에서 같이 싸워주기도 했습니다. 우리처럼 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치 활동조차도 운동이지 개인의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요. 사회적 약자의 뜻을 전달 받아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는 민노당이 분당한 뒤 진보신당으로 적을 옮겼다. 장애인 세력이 지도부에 필요하다 해서 부대표도 맡았다. 2012년 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진보당을 세울 때 참여했다가 당권파의 부정 경선 논란이 불거지자 탈당했다.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정파 싸움 속에선 장애인뿐 아니라 힘없는 소수자를 위한 운동이 힘들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후에도 장애인 인권을 위해 일했다. ‘종북 논란’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는 “정치와 상관 없는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선출도 이런데 내년 총선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진당 프레임’에 걸릴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원 동해시에서 1남 4녀 가족의 장녀인 그는 3세에 소아마비를 앓은 뒤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제도 교육은 초등 2학년까지가 전부였다. 누군가 매일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건 서른을 훌쩍 넘겨서다. 3년 만에 초등, 중등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마친 뒤 방송통신고를 다녔다. 그는 “학교에서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여성을 만나며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됐다”며 “백일장에 나가 생애 처음으로 상이란 걸 받아봤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장애인단체 안의 장애여성모임을 알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한 번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장애여성들과 교류하면서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장애여성의 인권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1997년 국제장애여성리더십포럼 한국 대표단장을 맡은 뒤 이듬해 국내 처음으로 장애여성 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을 설립했다. 장애여성 성폭력 상담소도 만들어 피해자와 가족의 슬픔을 끌어안았다. 2002년 장애인이동권연대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위해서도 싸웠다. 요즘은 장애인등급제ㆍ부양의무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장애인등급제는 비인권적 제도”라며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돈을 벌고 있으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한 부양의무제가 경제적으로 취약한 장애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다시 정치를 하고픈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회적 약자ㆍ소수자들이 제게 꼭 해야 한다고 말하면 외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정치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역사는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이 만드는 거라고 믿고 운동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대로 앞으로도 해 가는 게 제가 할 일입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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