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곳곳으로 흩어진 인류가 서로 만나는 것은 그리움의 해소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때문에 인간은 늘 길을 개척했고, 사용했고, 길을 차지하기 위해 피눈물 나게 노력했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남북의 길로 이어졌다.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횡단하는 오아시스 로드, 초원과 삼림으로 이어진 남부 시베리아 스텝 로드, 그리고 인도양을 가운데 두고 동아시아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마린 로드(바닷길)가 있다. 이 길들을 통해 상인과 군대, 종교인들은 비단, 향로, 황금, 철뿐 아니라 무기, 말, 사상, 예술 등을 전했다. 상품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좋은 길, 더 좋은 길목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갈렸고, 세계사가 다시 쓰여졌다.
이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서쪽 종점은 터키를 중심으로 한 동부 지중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종점이 바로 우리 민족의 터였고, 고대에는 신라였다. 우리는 해양을 포기한 반도국가가 아니었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 그리고 해양이 포함된 동아지중해의 해륙국가였다. 때문에 신라는 뛰어난 해양력과 산업 발달, 개방적인 세계관을 갖고 그 시대 유라시아 무역망의 한 거점으로 국부를 창출하였고, 유라시아적인 다양성 있는 문화를 발달시켰다.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경제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시 유라시아 실크로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신실크로드 전략과 함께 ‘일대일로’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 역시 ‘신동방정책’을 펼치면서 신러시아를 꿈꾸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관계를 맺으면서 미국과도 밀접해지고, 보수적으로 변하는 일본은 미국의 힘을 업고 해양실크로드에도, 중앙아시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라시아 실크로드는 우리 민족에게도 무한한 가치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그 지역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고, 외교적인 자주권을 확장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통일의 후원자로 활용이 가능하다. 지경학적으로는 석유ㆍ천연가스 등의 엄청난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시장이나 기술력 등의 수출 대상지로 활용할 수 있다. 사막의 길인 중앙아시아는 카스피해에서 산출되는 석유ㆍ천연가스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의 생산지다. 초원의 길과 삼림의 길로 이어진 남시베리아도 마찬가지다. 또한 북극해는 유전과 항로가 개발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력과 인프라 구축 경험, 그리고 양질의 인적자원이 결합한다면 경제적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유라시아 전략을 수립하고, 또 그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 그 가운데 하나가 문화적인 접근이다. 이 지역들은 혈연은 물론이고 언어, 기술, 종교, 예술 등 우리 민족문화의 생성ㆍ발전과 관련이 깊다. 일종의 문화공동체였다. 따라서 문화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또한 문화적인 유사성, 혈연적인 친밀감 등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와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찾고 활용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경주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실크로드 경주 2015’행사는 우리민족뿐 만 아니라 유라시아인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다. 해마다 이어가는 이 행사를 통해 유라시아 실크로드 국가 간 문화 동질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경제 상생을 도모하는 전략도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발생하고 있지만,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불필요한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다.
유라시아 실크로드가 새로운 역사적 가치를 부여 받아 떠오르고 있다.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학적 가치를 알고, 우리와 연관성을 찾는 작업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그 중심에 ‘실크로드 경주 2015’가 있다.
윤명철 동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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