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저녁 서울 명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장. 공연 시작 10분 전부터 극장 안이 웅성거린다. 무대 앞 대형 스크린에 객석이 비치자 어떤 관객은 당황하고, 어떤 관객은 신이 나 브이(V)자를 그린다. 그 사이, 객석을 가로질러 등 굽은 마법사가 뛰어 나온다. 도깨비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계부, 공주 드레스를 입은 기골 장대한 계모, 주인공 ‘제멋대로인 딸’이 잇따라 스크린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눈다. 스크린에는 다시 잔디밭 위의 빨간 상자 그림이 펼쳐지고, 스크린을 걷자 이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무대가 펼쳐진다. 무대 위 상자가 열리며 계모와 계부, 딸이 튀어나와 잔디밭을 누비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제 22회 베세토페스티벌의 참가작 ‘상자 속의 여인’(사진)은 다원예술이 어떻게 일반 관객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딸에게 반한 ‘백수’와 ‘꽃미남’이 선보이는 구애의 마임과 춤은 코믹한 현대무용을, 계모의 치마폭이 커지고 커져서 무대를 다 덮어버리는 장면은 디즈니 만화를 떠올리게 했다. 1917년 초연된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의 ‘허수아비 왕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모든 이들의 찬사를 얻지만 정작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작품을 제작한 일본 극단 노이즘은 현대무용가 가나모리 조가 설립한 무용단체다.
어린이 관객들이 적지 않았는데 만화 한 장면 같은 배우들의 의상과 무대 덕분에 공연이 끝날 때까지 놀랍도록 집중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공연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베세토페스티벌은 올해부터 연극제에서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고, 무용 다원예술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황잉 스튜디오는 중국 당대의 전기소설 ‘침중기(枕中記)’를 신국극 형식으로 재창작한 ‘황량일몽’(23~24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을, 극단 항주 월극원은 입센의 원작을 중국의 전통극인 월극으로 재해석한 ‘바다에서 온 여인’(18~1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을 선보인다. 처음으로 홍콩 극단도 초청받아 홍콩화극단이 현대인들의 내적 갈등과 심리적 혼돈을 담은 연극 ‘얼론(Alone)’(18~19일 남산예술센터)을 선보인다. (02)889-3561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