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세ㆍ월세 확산 서민 주거비 급등
무주택자 도시 거주비 소득 30% 넘어
월세 세제지원ㆍ저금리 대출 늘려야
요지경 같은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전월세난이 빚는 세태다. 얼마 전부터 매매가를 웃돈 전세가 나왔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더니 이젠 더 이상 드문 일도 아닌 게 됐다. 어제 나온 국토교통부의 8월 수도권 주택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매매ㆍ전세 거래가 있었던 아파트 1,291곳 가운데 전셋값이 매매가의 90% 이상인 거래가 155건(12%)이나 됐다. 그 중 29건(18.7%)의 전셋값은 아예 매매가를 넘어섰다.
이번 정기국감에서 최대의 화제어로 떠오른 이른바 ‘무피투자’ 역시 전월세난에 편승한 요지경 세태 중 하나다. 없을 무(無)에 ‘피 같은 내 돈이 들어가지 않는 투자’라서 무피인지, 영어로 피(feeㆍ부담금)가 없다는 의미의 무피인지는 설이 분분하지만, ‘돈 안 드는 투자’라는 것만은 분명한 무피투자의 구조는 단순하다.
매매가 4억 원짜리 중소형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90%라면 3억6,000만원 전세 끼고 4,000만원만 들이면 집을 한 채 사둘 수 있다. 3억5,000만원 보증금에 월 30만원씩 받는 반전세 계약을 한다면 매입자금 5,000만원에 대한 은행 이자를 빼고도 남는 장사가 된다. 얘기가 된다 싶자 부동산업자 등이 아예 ‘작전’에 나섰다. 아파트 전세값을 최대한 매매가에 육박하도록 끌어올려 무피투자자를 물색한 뒤, 매매거래와 전세거래를 동시에 일으켜 양쪽서 수수료를 먹는 장사다. 전세 보증금 상승의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희한한 건 전월세를 둘러싼 비정상이 판을 치고, 세입자의 아우성이 사방에 가득해도 여전히 느긋한 정부다. 국감장에 나와 그 부작용은커녕, 무피투자라는 말조차도 모른다는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의 고백은 당국이 상황을 얼마나 안일하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정부로서도 느긋함에 대한 나름의 논리는 없지 않을 것이다. 전세 보증금 급등 피해만 해도 비쳐지는 것보다 덜할 지 모른다. 국회 정무위 김기준 의원(새정연)은 최근 수도권 전세의 평균 보증금이 2010년 1억2,803만원에서 지난해 1억8,023만원으로 4년간 무려 41%나 올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약 5.5%에서 3.5%로 낮아진 걸 감안하면 실제 보증금 부담(조달) 비용은 각각 연간 700만원과 630만원 정도로 오히려 요즘이 낮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아가 거시정책 차원에서 부동산 침체를 방치할 거냐, 전셋값 상승을 무릅쓰고라도 부동산 경기를 살릴 거냐를 두고 선택한다면 당연히 부동산 경기를 살릴 수밖에 없다. 전세 보증금은 올라도 어차피 세입자 자산으로 남지만, 집값 하락은 빼도 박도 못할 자산손실로 이어져 경제 전체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논리에 기대 상황을 방치해도 되는 단계는 훨씬 지났다. 전세 보증금은 그렇다 쳐도, 반전세와 월세 확산으로 무주택 서민ㆍ중산층의 주거비가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국내 가계의 거주비 지출이 월 평균 7만3,900원이라는 통계청 자료는 전세와 자가 거주비를 ‘0원’으로 잡아 전혀 참고가 못 된다. 월급 400만원을 받는 무주택 40대 가장이 앞서 예로 든 매매가 4억 원짜리 중소형 아파트를 보증금 3억5,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는 조건의 반전세로 살고 있다면 매월 약 130만원, 소득의 32.5%를 주거비로만 지출해야 하는 게 진짜 현실이다.
정부는 그 동안의 잇단 전월세 대책에서 무주택 서민 주거비 문제의 핵심인 월세 부담을 정조준 한 적이 거의 없다. 지난해 월세 지출에 대한 세액공제를 약간 확대한 게 고작이다. 하지만 뉴스테이 같은 어정쩡한 공급책만으로는 서민들의 치솟는 주거비 부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최소한 전월세 전환률 하향 조정, 월세 지출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저금리 전세 보증금 대출 확대 등 3대 서민 주거부담 완화방안이 조속히 가동될 수 있도록 바짝 서둘러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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