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열여덟살 북한 소년병 役
"당시 나보다 어린 병사 가슴 아파
곧 스무살… 청춘영화 하고 싶어요"
2년 전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개봉을 앞두고 만났을 때는 분명 어른 얼굴이었다. 촬영장 스태프가 스스럼없이 담배를 권할 정도로 ‘노안’이었다. 이제야(누군가에게는 벌써) 고등학교 3학년. 뚜렷한 윤곽과 빛나는 피부가 생물학적 나이를 분명히 했다. 얼굴이 비로소 제 나이를 찾은 듯했다. 하지만 낮고 굵은 목소리가 또 다시 그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베이스 소리로 전달하는 생각들도 애늙은이라는 호칭에 어울렸다.
영화 ‘서부전선’의 개봉을 앞둔 여진구는 사고의 틀이 더 넓어진 듯했다. 연기도 여유로워졌다. 웃자란 아역배우가 아닌 성장 잠재력을 가늠할 수 없는 큰 재목이라는 판단이 앞섰다. 16일 오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떠는 게 좋아 인터뷰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며 기자를 반겼다.
영화 ‘서부전선’은 휴전을 코앞에 둔 6ㆍ25전쟁이 배경이다. 마흔 넘어 전선에 끌려온 국군 남복(설경구)과 열여덟 북한 소년병 영광(여진구)의 기이한 인연을 다룬다. 기밀문서를 옮기려다 동료들을 잃은 남복과, 탱크를 몰고 남진하다 홀로 남겨진 영광이 서로를 증오하다 우정을 쌓고 웃음과 울음을 토해내는 과정을 그렸다. 여진구는 희극과 비극 사이를 널뛰는 독특한 이 영화에서 평양사투리를 구사하며 선배 설경구와 112분의 상영시간을 이끈다. 그는 “전쟁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소년병이라 마음이 끌렸다”며 “전쟁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에너지로 전달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서부전선’은 여진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겼다. 그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촬영장에 가기 전 세세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광은 체계적으로 계산된 움직임보다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으로 연기해야 될 역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매번 계획적으로 연기를 해 (‘서부전선’)촬영 초반에는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는데 좀 지나니 자연스레 영광의 표정이나 말투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특이하고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6ㆍ25전쟁이 우리 세대에겐 매우 생소한 역사”라며 “영화를 촬영하며 나보다 어린 소년병이 있었던 당시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척 아팠다”고도 말했다. 애늙은이라는 수식이 어울릴 발언들이다.
연기이력 만 10년의 ‘중견’이라고 하나 스물을 문턱에 둔 어린 나이의 호기심은 감출 수 없었다. 여진구는 “전쟁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컷을 최소화하고 풀 샷(현장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촬영한 도입부 장면은 리허설을 많이 해야 했다”는 식의 전문성 깃든 설명을 하다가 “촬영장에서 처음 본 장비가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도 말했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답게 설렘과 불안이 교차된 발언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학은 내 로망이어서 입학은 반드시 할 것”이라며 “아마 전공은 연극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이 되면 운전면허를 취득해 운전도 하고, 치맥(치킨+맥주)도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는 “특히 연애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슬쩍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웃었다.
당분간 입시에 전념하느라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입시가 끝난다고 바로 출연작을 정하겠다는 말은 아니다”고 야무지게 말을 보탰다. 그래도 작품 욕심은 감추지 않았다. “배우는 것이 많고 잘해주기도 해 선배님들과의 작업이 재미있으나 또래들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곧 제대로 청춘이 되니 (흥행) 위험성이 있어도 ‘비트’ 같은, 청춘을 위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것. 노안, 애늙은이 등 우스개 섞인 호칭이 무색한, 역시나 낭랑 18세였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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