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드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 1743~1794)는 18세기 프랑스 수학자겸 사상가로 혁명기 온건파인 지롱드의 입법의원이었고, 지롱드 헌법의 초안을 썼다. 그가 제안한 ‘공교육 일반조직에 관한 법안’은 “모든 시민에게 공통의 공교육을 제공하고 불가결한 부분에 관해서는 무상 교육”을 하도록 규정, 의무교육과 교육기회 균등의 이념을 천명했다. 교육학계는 근대 국민교육사상의 뿌리가 거기 있다고 여긴다.
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볼테르 달랑베르 등과 더불어‘백과전서’편찬에도 가담했다. 계몽주의자답게 그는 인간과 세계의 진보를 단순하고 견고하게 낙관했다. 그의 역작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1793)’는 자코뱅 과격파에 의해 그의 법안들이 잇달아 부결되고 고발까지 당해 숨어 지내던 중에 집필됐다.
책에서 그는 “인간이 완전해질 가능성”을 신뢰했다. “재산은 자연적으로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을 지니”기 때문에 몇 가지 조건만 부여한다면 세상의 “부의 과도한 차이는 존재할 수 없거나 즉각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고 썼다. 그가 상정한 조건은 “민법이 재산을 영구화하고 축적하는 인위적인 방법을 확립하지 않고 어떤 금지법이나 세제상의 특권이 재산에 부여하는 우위를 제거”하는 거였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그의 급진적 환상을 안타깝게 회고한 바 있다.
콩도르세는 종교권력의 세속 정치 개입을 극도로 경계했다. 미셸 우엘벡은 2022년 이슬람 정당의 프랑스 집권 전후를 배경으로 한 최근의 가상 정치소설 ‘복종’에서 콩도르세의 1792년 입법의회 연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집트인들과 인도인들은) 굉장한 정신적 진보를 이룩했으나 종교 권력이 인간의 교육권을 강탈하는 순간, 더할 수 없이 수치스러운 무지의 우둔함 속으로 추락했다”(135쪽)는 대목.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저 인용의 주체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대표 마리 르 펜이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콩도르세의 역설’이었다. 1785년 논문 ‘다수결 확률해석 시론’에서 그는 선거의 승리가 더 많은 이의 열성적 지지보다 표나게 미움을 받지 않는 데 좌우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밝혔다.
조건만 잘 맞추면 “인간의 수명도 무한히 늘어날 것”이라고 믿었던 그는 1743년 9월 17일 태어나 50년을 살고 옥중에서 음독 자살했다. 프랑스 공교육은 약 100년 뒤인 1881년 시행됐다. “딴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라”는 값진 말이 그의 어록에 남아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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