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 스트레스·수면장애 등 탓
극단의 선택 5년간 35명이나
참혹한 현장 출동 후 치유 극소수
수당도 제때 못받아 소송까지
올해로 13년째 화재진압복을 입고 있는 오모(35)씨. 그의 일곱 살 아들이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방관 아저씨다. 중앙선을 넘나들며 달리는 길거리 소방차가 영향을 줬을 수도 있겠으나 소방관의 역할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잖아요.”
하지만 오씨가 만나는 현실은 완전 딴판이다. 화재 등 위급한 재난현장에서 싸워야 할 소방관들이 수당을 제때 받지 못해 법원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방관 숫자가 순직자보다 많은 현실에 오씨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15일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전국 소방공무원(국가ㆍ지방직) 2만1,509명이 1,933억원의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 전체 소방공무원(4만3,000명) 2명 중 1명 꼴로, 1인당 평균 미지급액은 890만원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초과근무수당 지급 대상자는 3만2,413명이며 이 중 7,826명의 소방공무원은 104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송에 나설 여건이 되지 않는 대다수 소방공무원은 지자체를 상대로 화해나 협약체결 등을 시도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답변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업무 스트레스에다 직업에 대한 회의까지 겹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소방관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직한 소방관은 33명, 자살한 소방관은 3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업무를 보다 순직한 소방관보다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PTSD), 수면장애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방관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위기에 처한 소방관들을 위한 대책은 미비하기 그지없다. 중앙소방본부(구 소방방재청)가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에 의뢰한 전국 소방공무원 심리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경험은 1인당 평균 7.8회로 일반인들의 최고 10배에 달하고 있지만 1개월 이내 치료 경험이 있는 경우는 3.2%에 불과하다. 박남춘 의원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소방공무원들을 심리적 질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문병원 설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의진 의원도 “정당히 일한 소방관에 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사기 문제는 물론 국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라며 “추경예산 편성이나 연차적 지급 등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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