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정규직으로 고용' 어정쩡
임금피크제엔 '청년 고용 활용' 등
구속력 떨어져 자의적 해석 소지
특별연장근로·통상임금 법제화
野·勞 반발 커 입법 추진 난항 예고
노동시장개선특위 1년 연장
취업규칙 변경·해고 등 논의 계속
노동계ㆍ경영계ㆍ정부가 지난해 9월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를 시작한 지 362일만인 15일 대타협 합의문에 최종 서명했다. 이에 따라 사회안전망 확충 등 60여개 합의과제를 중심으로 노동개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당초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목표였던 청년고용 확대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대해선 ‘추진한다’ ‘노력한다’ 등의 모호한 문구로 일관해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사정 대표자 만장일치로 합의문 의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5일 오전 7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본회의를 열고 지난 13일 노사정 4인 대표자회의에서 도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최종 의결했다. 이날 회의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노사정 관계자 1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노사정위 산하의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운영을 내년 9월까지 1년 연장해 쟁점(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 완화ㆍ일반해고 지침 마련)과 미정리 과제(기간제 사용기한 연장ㆍ파업업종 확대ㆍ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에 대한 논의를 계속 하기로 했다.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은 “오늘의 합의가 구호로 끝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기권 장관도 “대타협 정신에 입각해 노사와 긴밀히 협력해 법안과 지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동만 위원장은 ‘대타협 결과 고용불안정성만 심화될 것’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현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정부, 경영계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비정규직 고용 등 모호한 문구 향후 갈등 내포
대타협은 이뤄졌지만 합의문 곳곳이 모호한 문구로 채워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입법화 과정 중 노사정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예컨대 비정규직 고용차별 개선과 관련해 노사정은 ‘상시ㆍ지속적 업무에 대해서는 가급적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합의했지만, 이는 상시ㆍ지속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 방침보다 후퇴한 합의라 야당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반대가 예상된다. 큰 방향을 정하는 선언적 차원의 합의라는 한계가 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도 의심된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절감한 재원을 청년고용에 쓴다’가 아니라 ‘활용하도록 한다’고 명시한 것,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결을 위한 원ㆍ하청간 성과공유와 관련해 ‘상생협력 모범사례를 만들어 나간다’, ‘비정규직ㆍ협력업체 직원의 처우개선을 추진한다’ 정도로 선언한 것도 실제 이행여부를 기업의 선의에만 맡겼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확하게 ‘한다’는 합의가 없는 한, 특히 민간의 경우 노력한다는 선언으로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민간이 꼭 이행해야 하는 구속력이 적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석 고용부 대변인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권에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넘어가도 쟁점 여전
노사정의 합의과제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논의해 지침을 마련하기로 한 쟁점사항 2가지 이외에도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통상임금 법제화 등도 입법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은 “통상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이라는 개념을 입법화하되
제외금품을 시행령에 규정하기로 합의했다. 노사정이 시행령에 위임해 사실상 정부가 통상임금 범위를 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다. 현행 68시간인 주당 최대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되, 노사합의시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도입(4년 시행 후 재검토)하기로 한 것도 논란이다. 애초 한국노총은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다”며 특별연장근로 도입에 반대했었다. 하지만 국내 노조 조직률이 10%에 그치는 등 대다수 노동자들이 사측과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벌이기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당분간 주 60시간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노총 입장에선 협상을 깨고 나오는 것이 기득권 지키기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아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협의해 진행한다’ 등의 문구로 안전장치를 해뒀지만 얼마나 효력이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중장년이 일자리를 지켜 청년세대의 취업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 논리와 고액 연봉 귀족노조에 대한 공격이 여론의 힘을 얻으면서 한국노총의 협상 선택지가 제한됐다는 분석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k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