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파문후 변신 강조하더니…
보상금 근거 로그파일 삭제 의혹
공정위는 증거 은폐 방기 비판도
"밀어내기 입증 자료 사라져
피해 대리점주들 소송 어려워져"
남양유업 측은 "지울 이유 없다"
2년 전 ‘갑(甲)의 횡포’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남양유업이 불공정행위의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상생기업의 모범이 되겠다”던 다짐을 무색케 한 남양유업의 이중적 태도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과정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태만이 한 몫을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5일 “남양유업이 내부 전자발주시스템인 ‘팜스(PAMS)21’ 개선작업 과정에서 주문내역이 담긴 로그파일(컴퓨터 시스템의 모든 사용내역을 기록하고 있는 파일)을 고의로 삭제해 불공정행위의 증거를 없앴다”고 주장했다. 로그파일의 존재를 모르던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124억원의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을 제기해 119억원을 삭감받은 뒤 피해 대리점주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으로 보상금 규모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2013년 남양유업 갑질 논란의 핵심은 남양유업이 팜스21의 주문내역을 임의로 조작해 대리점들이 주문하지 않는 물량까지 발주하는 ‘밀어내기’였다. 이후 남양유업은 같은 해 7월 대리점협의회 측과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발주시스템 개선 등의 약속을 담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2014년 5월 피해 대리점주 1,800여명 중 100여명이 배상중재기구에서 최초 주문내역이 남아있는 로그파일을 근거로 산정된 보상금을 받으면서 남양유업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피해 대리점주들은 사측이 상생협약에 따라 발주시스템을 개선한다면서 보상금 산정의 근거가 된 로그파일을 삭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팜스21을 사용중인 대리점주들의 컴퓨터에는 올해 3월 이전의 주문내역이 남아있지 않아 과거 밀어내기 행태를 입증할 수 없게 됐고, 이로 인해 사측과의 협상이나 민사소송 진행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측의 시스템 개선으로 대리점주들이 직접 주문량 확인과 반송이 가능해졌지만, 지난해 7월 시스템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로그파일이 삭제됐고 올해 3월부터는 삭제된 로그파일의 복구까지 불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남양유업이 로그파일을 삭제한 시기가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을 진행하던 때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은 로그파일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에서 “124억원의 과징금 가운데 5억원 초과 부분을 취소하라”는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줬다. 피해 대리점주들의 법률대리인인 김철호 변호사는 “로그파일을 삭제하면 전체 물량 중 밀어내기가 어느 정도인지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남양유업 측은 “로그파일을 지울 이유도 없고 지운 적도 없다”면서 “대리점에 가서 확인해줄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공정위가 남양유업의 증거 은폐를 방기했다는 비판도 크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를 위한 조사 과정에서 단 2명의 피해 대리점주만 불러 상황을 파악했고, 로그파일의 존재도 항소심 판결 후에야 알았다. 특히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서는 로그파일을 증거자료로 제출해달라는 피해 대리점주들의 요구를 묵살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갑질 논란 이후 각종 송사에 휘말린 남양유업은 유일하게 공정위를 상대로 한 과징금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 의원은 17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원구 남양유업 대표와 김홍곤 남양유업 감사팀장을 상대로 증거 은폐 의혹과 상생협약 위반에 대해 질의할 예정이다.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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