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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참 예쁜, 가을 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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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참 예쁜, 가을 산사

입력
2015.09.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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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도솔천 옆으로 꽃무릇이 지천이다. 김성환기자

계절 교차하니 마음 또 헛헛해진다. 문득 가을. 이럴 때 고즈넉한 사찰 찾아 들면 위안이 된다. '잘 늙은 절집'은 외할머니의 얼굴처럼 푸근하고, 가는 길에는 예쁜 가을 꽃 활짝 피었다. 단풍 화려한 만추(晩秋)가 되면 북새통, 사방 고요한 요즘이 마음 살피고 산책하기 딱 좋다.

● 꽃무릇 예쁜 선운사

선운사는 전북 고창 선운산 기슭에 있다. 동백꽃 유명한 그 절집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도, 가수 송창식도 탐스러운 동백꽃에 흠뻑 취해 이를 노래했다. 그런데 가을에는 달라진다. 동백꽃 말고 꽃무릇이 주인공이다. 붉고 가냘픈 긴 잎을 가진 수선화과의 참 예쁜 꽃이다.

꽃 활짝 피면, 매표소에서 경내에 이르는 산책로에 붉은 융단 깔린다. 도솔천을 따라 꽃무릇이 지천이다. 긴 꽃대가 바람에 흔들리면 꽃이 교태를 부린다.

찬찬히 꽃 살핀다. 꽃무릇의 잎은 초여름에 지고, 꽃은 9월쯤부터 핀다. 꽃이 떨어져야 잎이 돋고 잎이 죽어야 꽃이 사는 셈이다. 꽃과 잎은 평생 서로 만날 일이 없으니 애틋하다. 전설도 한 자락 걸쳤다. 옛날 어느 여인이 어느 스님을 사랑했다.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끝내 여인은 세상과 등을 졌고, 무덤에 꽃무릇이 피었으니 또 애틋하다. 그래서 꽃무릇 보면 그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한다. 도솔천 따라 걸으며 그리운 것들, 실컷 그리워한다. 가을에만 만끽할 수 있는 호사다. 꽃무릇은 10월 초순까지 피어있다.

▲ 백양사의 신령스러운 자태의 갈참나무. 김성환기자

● 갈참나무 신령스러운 백양사

백양사는 전남 장성 백양산 기슭에 있다. '애기단풍' 예쁘다고 소문난 그 절 맞다. 단풍 들면 이거 보러 몰려온 사람들로 야단법석이다. 이러니 조금 일찍 찾아 호젓함을 느껴본다.

매표소에서 절집에 이르는 길은 1.6km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꼽힌 '명품 길'이다. 숲 터널을 관통하고 연못도 지난다. 그리고 연못 앞에서부터 아주 오래 된 갈참나무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백양사는 단풍명소이자 갈참나무 군락지다. 들머리 주변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나무들이 많다. 700년 수령의 한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갈참나무도 이 길에 있다. 우람한 몸통에서 흩어지는 가지들이 신령스럽다.

갈참나무 군락지 지나면 쌍계루와 백학봉이 연못에 반영된 풍경. '백양제일경'이라고 불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백양사는 한국 불교 5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고불총림이다. 그러나 경내로 들면 큰 절 특유의 위압감 대신 소박하고 단아한 멋에 마음 푸근해 진다.

▲ 개심사 가는 길에 만난 목장. 김성환기자

● 목장ㆍ호수ㆍ솔숲…개심사

충남 서산 운산면 신창리에 상왕산 개심사가 있다. 가람들이 예쁘고 가는 길도 아름답다. 목장지대 지나고 고즈넉한 저수지를 에두르면 개심사 들머리다. 여기까지 가는 길만해도 참 운치가 있다. 개심사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로가 운산면 목장지대를 관통한다. 주변은 완만한 곡선의 구릉들이 포개진 형국이다. 봉긋한 언덕들이 마음 참 편안하게 만든다. 목장지대 거슬러 오르면 슬그머니 등장하는 저수지가 신창저수지(신창제)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예쁜 다리도 있고 가장자리에 물풀도 있어 제법 운치가 있다. 호수를 에둘러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돼 있고 작은 쉼터도 마련돼 있다. 자전거 타지 않아도 잠깐 숨 고르며 산책하고 가도 좋다.

개심사 주차장에서 경내까지는 멀지 않다. 돌계단을 따라 솔숲을 오목오목 짚어 20분쯤 걸으면 닿는다. 개심사 솔숲은 대부분 수령이 50~60년인 어린 소나무들이다. 그래도 휘어진 모양새는 예사롭지 않다. 숲길 끝에는 그 유명한 외나무다리다. 개심사의 명물인 볼거리다. 반듯한 직사각형 연못을 가로질러, 반 갈라진 큰 통나무 기둥이 떡하니 걸쳐져 있다. 가을 연못 주변 풍경은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경내로 들 수 있지만, 일부러 걸음 한 이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이 풍경에 반해 다리를 건너게 된다.

개심사에서는 가람의 기둥을 눈여겨본다. 굽어있고 배가 불룩하며 위아래의 굵기가 다르다. 매끈하지 않고, 참 못생겼다. 나무를 전혀 손질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대로 갖다 쓴 탓이다. 그런데 개심사가 좋은 이유로 이 기둥을 꼽는 이들이 많다. 못난 나무가 절집 기둥이 되는 것에 마음이 동한 것일지 모를 일이다.

▲ 월정사 전나무길. 김성환기자

● 전나무길 아름다운 월정사

강원도 평창 오대산 기슭에 천년고찰 월정사가 있다. 절집도 절집이지만 경내로 드는 길이 더 유명하다. 일주문에서 경내까지 이어진 길은 길이가 800m에 불과하지만 수백년 수령의 수만그루 전나무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덮고 있다. 전북 부안 변산의 내소사 전나무길과 쌍벽을 이룬다. 특히 숲길은 일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뻗어있는 자연림이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맨발로 길을 걷는 이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어느 때든 좋지만 특히 해질 무렵 숲길을 걸어보길 권한다. 부드러운 저녁 볕이 나무 사이를 가르며 비추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저녁 공양시간에 맞춰 월정사에서 범종을 친다.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 퍼지는 종소리가 운치가 있다. 월정사 내에는 고려시대 석탑인 팔각구층석탑(국보48호)이 볼거리다.

▲ 영주 부석사. 김성환기자

● 은행나무 고운 부석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부석사가 있다. 은행나무의 샛노란 빛깔을 좋아한다면 메모해 두고 때를 기다린다. 매표소에서부터 천왕문에 이르는 약 1km의 들머리에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섰는데 단풍 들면 참 곱다. 완만하게 굽어진 길과 어우러진 풍경에서 가을 서정 잔뜩 풍긴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이 급히 걷지 못하도록 한 배려도 세심하다.

경내로 들어가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꼭 본다. 가운데가 볼록한 것이 어찌나 우아한지, 기둥 하나가 사람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부석사에는 해넘이 두세시간 전에 닿는 것이 좋다. 그 때부터 은행나무 길을 걷고 무량수전 앞마당을 서성이다 보면 황금빛 노을까지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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