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쯤 가을,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찾아간 적 있었다. 가을바람이 스산해진 토요일 저녁, 충동적으로 기차를 탔는데, 약간 이상한 일이 있었다. 동네가 크게 변한 건 없었다. 내가 길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길이 나를 알아보고 걸음을 빨아 당기는 기분이었다. 복개도로 한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기억 속보다 훨씬 좁고 짧아진 골목.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손에 잡힐 듯 선해졌다. 마침 앞을 지나던 꼬마가 혹시 그 시절 내 친구 아닌가 싶었다. 살던 집은 골목 끝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골목도 근처 집들도 큰 변화 없는데, 내가 살던 집이 퍼뜩 안 나타났다.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옆집도 앞집도 그대로인데 우리 집 자리만 안 보였다. 무슨 함정에 빠진 듯 우왕좌왕하며 골목 위아래를 몇 차례 배회하다 다시 돌아온 골목 초입, 느닷없이 나 살던 집과 마주쳤다. 무슨 장승처럼 코앞에 있었다. 역시 기억 속보다 작아졌지만, 집을 찾으니 마음 속 한 켠에 뭉텅이져 있던 기억의 실들이 주루룩 풀리는 기분이었다. 집은 작아졌지만, 그 앞에 선 나는 집보다 백 배 수백 배 더 작아져 작은 점이 되고 있었다. 모든 게 되살아났고, 모든 게 한꺼번에 다시 지워졌다. 멀쩡히 서있는 집을 처음엔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잠시 따져봤다. 다시 잊히는 게 두려워 짐짓 모른 척 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순간, 갑자기 비가 내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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